'불평등 해법' 논쟁 다시 불붙는다

피케티 "분배 먼저" vs 디턴 "성장 우선"









12일(현지시간) 앵거스 디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가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학계의 가장 뜨거운 화두인 불평등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디턴 교수가 '21세기 자본'의 저자인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와 같은 좌파 경제학자들과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교수 등 주류 학파 간에 벌어지는 '성장 대 분배' 논쟁에도 시사점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불평등이 나쁜 것만도 아니다"=광부의 아들로 태어나 평생 빈곤 해소 문제에 천착해온 디턴 교수의 노벨상 수상으로 이른바 '피케티 신드롬'에도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디턴 교수는 전 세계 빈국에 대한 광범위한 실증적 자료를 통해 "불평등은 대단히 복잡한 문제로 좋기도, 나쁘기도 하다"는 점을 증명했다. 그는 "과도한 불평등은 공공 서비스, 민주주의 등에 대한 악영향을 준다"면서도 "불평등은 기업가 정신을 창출하는 등 경제 성장과 성공의 원천"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자본주의, 자유무역, 민주주의, 기술 발전 등의 여파로 지구촌 대부분 국가에서 절대 빈곤층이 지난 20~30년간 급감했고 앞으로도 이런 추세는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을 앞지르는 자본주의의 속성 탓에 경제가 성장할수록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피케티의 주장을 정면 반박한 셈이다.


이는 선진국 중심으로 분석했던 피케티 교수와 달리 불평등 문제를 지구촌 차원에서 분석했기 때문이다. 포브스는 "피케티 교수가 한 나라 내에서 불평등 증가에 초점을 맞췄다면 디턴 교수는 중국 등 신흥국의 부 증가와 국가 간 불평등 감소에 더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디턴 교수는 빈곤·소비·보건 등 폭넓은 연구 분야를 통해 그동안 국내총생산(GDP) 등에 머물러왔던 경제 발전의 측정 수단을 다양화하면서 삶의 질 개선 문제에 대한 시야를 확장시켰다는 게 포춘지의 설명이다.

특히 디턴 교수는 피케티 교수가 주장하는 부유세 등 높은 소득세는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재정 수입 확대 효과도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 아울러 그는 빈곤국 원조에 대해서도 좌파 경제학자들과는 대척점에 서 있다. 병원 설립, 아동 치료 등은 도움이 되지만 과도할 때는 부패, 계층 간 사회 갈등 증가 등 의도치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저성장·불평등은 한국은 물론 전 세계의 공통 현상으로 앞으로 성장과 분배 등 해결 방안을 두고 좌우파 간의 논쟁이 가열될 것"이라고 말했다.

◇"불평등 심화 현실은 인정해야"=하지만 디턴 교수는 선진국 내에서 불평등 심화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감세ㆍ규제 완화 등을 통한 성장을 강조하는 주류 성장론자들과도 차별화된다. 그는 지난해 영국의 '왕립 경제학회'에 보낸 서신에서 "미국과 영국이 불평등 문제에서 깨어나야 한다"며 맨큐 교수가 그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반면 그는 피케티 교수가 불평등 심화 문제에 대한 광범위한 자료를 수집해야 했다며 옹호했고 정부가 민간 의료시장에 간섭하는 미국의 '오바마케어'에도 찬성 입장을 보이고 있다.

디턴 교수는 12일 열린 노벨상 수상 기념 기자회견에서도 "불평등은 우리를 부유하게 만들 수 있는 지점을 넘어섰고 현재 가장 심각한 위협"이라면서 "불평등이 기후변화를 불러오는 한 요인이며 정치와 민주주의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부자들이 규칙을 쓰게 되는 그런 세계가 정말 우려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가디언은 "주류 경제학자들은 소비세를 인하하면 성장과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디턴 교수는 전체 소비는 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디턴 교수의 메시지는 모든 것을 평등하게 하는 것은 옳지 않고 최소한의 복지체계는 유지하되 그 이상은 성과 체계가 작동하게 경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최선이라는 뜻"이라며 "성장 우선이냐, 복지 우선이냐 이야기가 나오는 한국 경제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설명했다.

/뉴욕=최형욱특파원 choihuk@sed.co.kr 세종=이태규기자 classic@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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