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철의 철학경영] 가능한 일보다 옳은 일부터 시작하라

<10> 마피아와 기업의 차이



옛날에 9,000명을 거느리는 큰 도둑 두목, 도척이 있었다. 부하가 묻는다. "우리 같은 도둑에게도 도가 있나요?" "물론이다. 다음의 다섯 가지를 지켜야 한다. 첫째, 어느 집이 털 만한가를 바로 알아내는 것이 성(聖)이다. 둘째, 물건 훔치러 집에 들어갈 때 제일 앞장서서 들어가는 것이 용(勇)이다. 셋째, 일을 끝내고 제일 마지막으로 철수하는 것이 의(義)다. 넷째, 도둑질할 만한 물건인지를 아는 것이 지(知)다. 다섯째, 각자의 몫을 공평하게 나눌 줄 아는 것이 인(仁)이다. 이 다섯 가지 덕목을 가진 자만이 큰 도둑이 될 수 있다." 장자가 거협편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이 우화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과연 대단한 도둑이다. 적어도 이런 도적집단은 콩가루 집안은 아니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여기에 동원된 논리에 가장 큰 허점이 하나 보인다. 자신들이 하는 일의 가치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단지 주어진 목적을 효율적이고 공평하게 수행하려는 과정과 절차에 대한 수단적 덕목만이 있을 뿐이다. 나치 시대에 수많은 유태인들을 죽인 전범들은 자신들이 선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수많은 유태인들을 격리 수용한 상태에서 식량이 모자라 굶어 죽고 있었다. 그럴 바에는 가스실에서 빨리 안락사시키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도 생각했을 수 있다.


어떤 일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목표가 가지는 가치다. 가치 있는 일을 수행할 때만이 수단으로서의 덕목이 의미를 가진다. 일반 기업과 마피아의 차이가 무엇일까.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용의가 있다." 이런 목표를 가진 기업조직은 항상 마피아로 전락할 위험을 안고 살아간다. 자기 조직이 조금 어려운 상황에 빠지면 어떤 일을 하더라도 정당화될 수 있다고 자기 기만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는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하고 있는데 왜 나에게만 시비를 거느냐"고 항변한다. 절차와 과정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내가 하고 있는 일의 목표와 가치다.

마피아의 십계명 중의 하나는 '조직의 비밀을 절대 외부에 발설하지 않는다'이다. 내부비밀을 외부에 발설하면 조직의 쓴맛을 어김없이 보여준다. 침묵을 지키면 풀려나고 발설하면 상대방을 사형에 처할 수 있는 두 죄수 이야기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죄수의 딜레마'라고 불리는 이야기다. 독방에 가둬놓고 두 죄수에게 상대방의 죄를 불라고 하면 대부분 다 분다. 내가 먼저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기업들은 현재 어떤 상황에 있는가. 추구하는 목적이 정당한가. 목적을 성취하는 수단이 정당한가. 아니면 "작은 것을 훔치면 좀도둑이지만 큰 것을 훔치면 영웅이 된다"는 사고방식에 도취해 있는 것은 아닌가. 고객에게 만족을 주면서 취하는 이익은 정당하다. 그러나 고객을 속이고 세금을 탈루하면서 취하는 이익은 처벌의 대상이다. 그래서 비즈니스에서는 모든 거래가 윈윈이 돼야만 지속 가능한 관계가 되는 것이다.

"가능한 일부터 시작하지 말고 옳은 일부터 시작하라." 경영철학의 구루 피터 드러커가 한 명언이다. 현실에서 올바른 일을 해나가기 위해서는 과정과 절차의 중요성 못지않게, 올바른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다. 올바르지 못한 목표를 설정하면 그 조직이 오래갈 수가 없다. 국가와 사회가 그러한 행동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홍길동, 임꺽정, 그리고 로빈후드와 같이 도적질의 목적이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을 위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지속 가능한 상태를 유지할 수 없는 이유는 목적에 못지않게 수단과 방법도 중요하다는 교훈을 주기 때문이다. 돈이 된다고 아무 것이나 다 해서는 안 된다. 위대한 기업은 자신의 업의 본질을 망각하지 않는 법이다.

김형철 연세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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