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적 인플레·높은 실업률… '차비즘'에 등 돌렸다

■ 베네수엘라 야권, 17년만에 총선 승리

남미 좌파정권의 시초격인 베네수엘라에서 집권 좌파가 선거에 패배한 것은 오랜 경제난으로 가난과 생활고에 시달려온 국민들이 무능한 좌파정권을 심판대에 올린 것으로 풀이된다. 복지확대 등 더 나은 삶을 바라며 지난 1999년 우고 차베스가 이끄는 좌파에 몰표를 던졌던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16년이 지난 지금 삶의 질 향상은커녕 경제난으로 생존마저 힘들어지자 무능한 좌파정권을 철저히 외면해버렸다.

6일(현지시간) 블룸버그 등 외신은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이끄는 집권 통합사회주의당(PSUV)이 이번 선거에서 다수당의 지위를 잃을 것으로 전망하면서 좌파정권의 패배 원인으로 살인적인 인플레이션, 높은 실업률 등 경제난을 꼽았다.


베네수엘라 좌파정권은 1992년 쿠데타에 실패한 후 우여곡절 끝에 6년 후인 1998년 대통령에 당선된 차베스에서 비롯됐다. 남미 좌파의 아이콘으로 불린 그는 집권 이후 석유기업을 국유화하고 막대한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무상교육, 무상의료, 저가주택 공급, 특권층 축출 등 빈민층을 겨냥한 사회주의적 복지정책을 펼쳤다. 이 같은 정책은 처음에는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의 정책은 차베스와 포퓰리즘을 합성한 '차비즘(Chavism)'으로 불린다. 그의 계승자인 마두로 대통령 역시 이 같은 포퓰리즘 정책을 고수하면서 17년간 좌파정권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대중의 인기에 영합한 포퓰리즘 정책은 갈수록 기업활동 등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렸다. 게다가 최근 들어 세계 경제침체로 원유 수요가 줄면서 전체 수출의 90% 이상을 원유 수출에 의존하는 베네수엘라 경제는 재정 위기에 내몰리는 등 큰 타격을 입게 됐다. 세계통화기금(IMF)은 유가 하락으로 올해 베네수엘라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0%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재정사정이 악화되면서 베네수엘라의 10월 외환보유액도 152억달러(약 17조7,460억원)로 2003년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내년 말까지 158억달러를 갚아야 하는 베네수엘라는 현재 보유한 금을 팔아 재정수요를 충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와중에 베네수엘라 볼리바르화 가치도 2년 반 만에 97% 이상 폭락했다. 1볼리바르는 2013년 4월에만도 4달러 이상 가치가 있었으나 현재는 11센트까지 떨어졌다. 화폐가치가 폭락하면서 국민들의 실질소득도 크게 줄었다. 지난달 뱅크오브아메리카는 화폐가치 하락으로 베네수엘라 국민들의 실질소득이 2년 전보다 36%나 줄었다고 밝혔다. 앞서 뉴욕타임스(NT)는 돈 가치가 떨어져 도둑들도 볼리바르화를 훔쳐가지 않는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살인적 인플레이션도 문제다. 블룸버그는 올해 베네수엘라의 물가상승률이 124%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현지 레스토랑에서 두 사람이 저녁 한 끼를 먹으려면 3만볼리바르가 필요한 것으로 조사됐으며 페인트 1갤런 값은 1주일 만에 6,000볼리바르에서 1만2,000볼리바르로 2배나 오르는 등 생필품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최용순기자 senys@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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