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환율전쟁 자제 합의했지만…] 느려진 美금리인상 시계… 주요국 되레 '통화 절하' 가속화하나

지난달 G20 재무회의 때처럼 또 공염불 가능성









주요국 재무장관들이 10일(현지시간) 국제통화기금(IMF) 최고 자문기구인 국제통화금융위원회(IMFC) 공동선언문을 통해 경쟁적인 통화가치 절하 자제에 합의했지만 환율전쟁의 포성이 멈출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시계가 느려지면서 주요국의 돈 풀기 공세는 더 가속화할 가능성이 높다. 연준이 긴축 행보를 머뭇거리는 지금이 신흥국들로서는 금리인하의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이다.

◇연준, 10월 금리인상 완전히 물 건너갔나=현재 시장은 갈수록 연준 기준금리 인상이 늦어질 것이라는 데 베팅하고 있다. 글로벌 경기 둔화, 달러화 강세 등의 여파로 수출·인플레이션·제조업 등 미 경제마저 타격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 9일 미 노동부에 따르면 9월 미국의 수입물가가 전월 대비 0.1% 하락했다. 전문가들 예상치인 '0.5% 하락'은 웃돌지만 3개월 연속 하락세다. 인플레이션 저조에 금리인상 시기가 지연될 것이라는 전망도 커지면서 달러화 역시 약세를 보였다. 또 이날 연방금리(FF) 선물 시장에서 투자가들은 10월 금리인상 확률을 겨우 7% 수준으로 내다봤다.

연준 인사들도 이번 달 금리인상을 주저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날 대표적인 '매파'인 데니스 록하트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10월이나 12월 금리인상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최근 지표들은 내 논점이 여전히 유효한지에 대해 더 강한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다"며 한발 물러섰다. 그는 이어 "몇 주 전보다 (경제) 하방 리스크를 더 느끼고 있다"며 "(금리인상을 위해서는) 소비 등의 지표들을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비둘기파인 윌리엄 더들리 뉴욕 연은 총재는 글로벌 성장 둔화로 미국의 노동시장, 인플레이션까지 영향을 받을 경우 금리인상이 내년으로 미뤄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는 "연내 금리인상이 가능할 것으로 보지만 이는 전망일 뿐 약속은 아니다"라며 "12월까지 많은 경제지표가 예정돼 있다"고 설명했다.

찰스 에번스 시카고 연은 총재 역시 "첫 인상 시기와 상관없이 금리가 내년 말까지 1% 아래에서 머무는 게 적절하다"고 말해 금리인상을 서둘러서는 안 된다는 뜻을 내비쳤다. 가능성은 아주 낮지만 연준이 유사시에 유럽과 마찬가지로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실제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마이너스 금리를 검토했다가 채택하지 않은 바 있다. 나라야나 코철라코타 미니애폴리스 연은 총재도 지난달 보고서에서 "노동시장을 견인하기 위해 금리를 마이너스로 끌어내려야 한다"고 밝혔다.

◇레토릭에 불과한 "환율전쟁 자제" 약속=이처럼 연준의 긴축 행보가 지연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양적완화·금리인상 등을 통한 각국의 통화가치 절하 작업은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5일 주요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도 '경쟁적인 평가절하 자제와 모든 형태의 보호주의 반대'에 합의했지만 공염불에 그친 바 있다.

지난달 29일 인도 중앙은행(RBI)이 전문가들 예상(0.25%포인트)보다 큰 0.5%포인트의 금리인하를 단행한 게 단적인 사례다. 대만도 24일 4년 3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인하했고 우크라이나도 바로 다음날 5%포인트나 금리를 내렸다. 재정 집행 여력이 바닥나면서 경기 방어의 수단이 통화 가치 하락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르웨이도 지난달 24일 통화가치를 떨어뜨리기 위해 기준금리를 1.00%에서 0.75%로 내렸다. 멕시코·터키 등의 경우 당초 외국인 자금 유출을 우려해 금리를 올리려다가 지금은 금리동결에 동참하고 있다. 또 유럽과 일본은 추가 양적완화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고 선진국 가운데 첫 금리인상 주자로 유력했던 영국도 행동을 미루고 있다.

이 때문에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저금리의 늪에 빠졌다는 우려도 나온다. 신흥국은 물론 연준마저 통화 가치 강세를 우려해 선제적인 금리인상을 미루는 악순환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전 세계 금융정책을 자문하는 역할을 하는 싱크탱크로 장클로드 트리셰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이끄는 G30는 10일자 보고서에서 "중앙은행 통화 정책만으로는 더 이상 세계 경제를 구할 수 없고 출구전략이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라며 "너무 늦어지면 또 다른 위기가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보고서는 "(선진국) 중앙은행은 (초저금리와 양적완화 등) 자신들의 정책이 정부가 위기를 해결하도록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라고 하지만 시간은 이미 소진됐으며 (채권) 매입의 대가를 치렀다"고 강조했다. /뉴욕=최형욱특파원 choihu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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