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하기 전에 아무리 꼼꼼히 따져도 뜻밖의 변수가 생긴다. 일의 결과도 처음 생각했던 바와 달라지기 마련이다. 요즘 우리 사회의 기구나 단체는 모두 자기가 주장하는 대로 해야 나라가 살고 그렇지 않으면 무슨 큰일이 생길 것처럼 선전하고 있다. 예컨대 정부는 하루바삐 한중 자유무역협정(FTA)과 노동개혁 법안을 처리해야 우리 경제의 체질을 개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노동계는 정부의 노동개혁이 개선이 아니라 지금보다 노동 조건을 훨씬 악화시킨다면서 개혁이 아니라 개악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우리는 지금까지 사회 현안을 처리하는 관행에 대해 깊이 따져볼 만하다. 노동개혁의 법안이나 공천 룰 제정도 이번이 결코 처음이 아니다. 비슷한 사안이 되풀이되는데도 그 사안을 종합하는 사고와 절차의 관행이 아직 없다. 사실 한중 FTA만 놓고 보더라도 우리 경제에 미칠 파장은 단기별로 면밀하게 살펴봐야 한다. 한중 FTA 체결이 피할 수 없는 사태라고 하더라도 그 영향이 단기·중기·장기에 따라 어떻게 나타날지 검토해야 한다. 각자는 자기 주장의 근거를 제시하며 전체적인 결과를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좋은 면을 강조했다가 나중에 심각한 부정적 현상이 생긴다면 정치인과 공무원 중에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이제까지 우리 사회는 1997년 IMF 사태 이후에 몇몇 식자들이 자신의 판단 오류를 반성하는 글을 썼지 어느 누구도 정책을 둘러싼 과오에 대해 진지한 성찰과 통렬한 반성을 한 이야기가 없다. 공자는 자신의 핵심 사상을 인(仁)으로 표현했다. 그것은 사람 사이가 편해져서 서로 부담 없이 가까워지고 살맛 나는 세상을 가꾸는 것을 말한다. 그의 제자 번지(樊遲)가 인의 의미를 물은 적이 있다. 공자는 간단하게 "선난이후획(先難而後獲)"으로 대답했다. 먼저 어려운 일을 하고 나서 얻을 것을 생각한다는 뜻이다. 얼핏 '선난후획'이 아니라 '선획후난'이 맞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누구나 이득을 생각하고서 일을 하고 어려운 것을 피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곰곰이 따져보면 정책이든 일이든 모든 사람에게 이득이 돌아가는 일은 없다. 한중 FTA의 경우 이득을 보는 산업 분야가 있다면 당연히 피해를 보는 산업 분야가 있다. 이때 이득만 앞세워서 조약의 체결을 강행하면 손해 보는 분야의 고통은 해결되지 않은 채 고스란히 다음 사람의 책임으로 남게 된다. 조약을 체결하고 성과를 자화자찬하기에 앞서 손해 보는 사람들의 고통을 해결해야 한다. 그래야 법안의 유효성이 길어진다. 그렇지 않으면 금방 갈등이 다시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선획후난'의 병폐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선획후난의 관행이 되풀이되기 때문에 과거에 어렵게 매듭을 지은 약속·조약·대타협·합의문 등의 사회적 합의가 쉽게 파기된다. 일단 숨을 돌리고 보자는 식으로 합의를 맺고 난 뒤에 상황이 달라지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새로운 '개혁'을 추진한다. 이러한 합의의 관행을 바꾸려면 공자의 '선난후획'의 제안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골치 아프고 복잡해 피하고 싶은 쟁점을 타결하고 난 뒤에 그 혜택을 말해야지, 서둘러 과실만을 챙기고 병폐를 처리하지 않으면 결국 미래세대가 고통을 떠안게 된다. 미래에 큰 영향을 끼치는 현안일수록 속도전이 아니라 만반의 검토를 통해 사회적 합의 비용을 줄여야겠다.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