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에 여성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전쟁·재난 참상 고발… 동시대 아픔 껴안다

올해 노벨문학상의 영예는 전쟁과 원전사고 등 참혹한 현실을 다큐 산문형식으로 고발해온 벨라루스의 여성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67)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한림원은 8일 "우리 시대의 고통과 용기를 보여주는 기념비적인 다운율 작품(polyphonic writings)을 써왔다"며 알렉시예비치를 수상자로 발표했다. 다운율 작품이란 한시에 두운을 넣는 것처럼 산문에 시적 기법을 차용한 소설을 말한다.

이번 수상으로 벨라루스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국가가 됐다. 그는 이날 수상 직후 스웨덴 SVT방송과의 전화통화에서 앞서 노벨상을 받은 러시아 작가를 언급하며 "부닌과 파스테르나크와 같은 위대한 이름을 순간 떠올렸다"며 "한편으론 환상적인 기분이지만, 한편으론 심란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알렉시예비치는 스웨덴 한림원에서 전화가 왔을 때 "집에서 다림질을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알렉시예비치의 책은 미국, 독일, 영국, 스웨덴, 프랑스, 중국, 베트남, 불가리아 등에서 35개 언어로 번역 출간됐으며 전 세계에서 수백 편의 영화와 연극, 방송극을 위한 대본으로 사용됐다. 그는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재단의 최고정치서적상, 중남부 유럽 문화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국제 헤르더 상,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평화상, 전미 비평가협회상 등 수많은 국제상도 수상했다.

벨라루스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알렉시예비치는 1948년 우크라이나 이바노프란콥스크에서 군인 가족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벨라루스인이고, 어머니는 우크라이나인이다. 아버지가 군에서 퇴역한 후 그들은 아버지의 고향인 벨라루스로 돌아가 정착했고, 그곳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둘 다 교사로 일했다. 벨라루스 국립대 언론학과 졸업 후 알렉시예비치는 고멜 지역의 나로블이라는 마을에서 지역 신문사 기자로 일했다. 기자로 일하며 집필 활동을 해 온 알렉시예비치는 어떻게 하면 인간의 삶을 제대로 전달 할 수 있을 지 끊임 없이 고민했다. 국내에 최근 번역 출간된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문학동네 펴냄·오른쪽 사진)'는 그의 이런 고민이 담긴 대표작 중 하나다.

이 책은 2차 세계대전에 직접 참전했거나 목격한 여자들 200여 명의 이야기를 정리한 책이다. 작가는 책을 통해 그들의 처절하고 가슴 아픈, 다양한 사연들을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로 가감 없이 들려준다. 이밖에도 범죄적이고 폭력적인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대한 충격적인 폭로를 담은 '아연 소년들', 사회주의가 몰락하자 자살을 시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죽음에 매료되다', 체르노빌 원전사고 이후, 폐허에서 핵전쟁 이후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체르노빌의 기도: 미래의 연대기' 역시 고통과 절망 속에 빠진 이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전달한 걸작이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체제를 고발하는 그의 작품 특성상 그는 구 소련 시절 정치적 박해, 망명 등 수난을 겪기도 했다. 대표작인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영웅적인 소비에트 여성들에게 찬사를 돌리지 않고 그들의 아픔과 고뇌에 주목한다는 사실 때문에 비난을 받았다. 반소비에트적 정서를 가진 반체제적 인사라는 평판도 얻었다. 결국 벨라루스 중앙위원회의 공산당 명령에 따라 기출간된 알렉시예비치의 책은 폐기됐고 그녀는 반공산주의, 반정부적 견해로 인해 비난을 받았고, 사직 협박도 받았다.

그러나 협박에 굴복하지 않고 그는 작품을 통해 인간의 삶의 궤적을 쫓아가는 작품을 연이어 발표했다. 이런 그의 의지가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결과로 이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번역한 박은정씨는 "한림원의 수상 이유에 전적으로 공감한다"며 "'내 사람 우리 사람'이란 러시아 표현이 있는데, 알렉시예비치는 글을 쓸 때 인터뷰를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디든 찾아가 그들과 공감했다. 그런 노력 덕에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이 그에게 마음을 열었다. 한림원에서 이런 점들을 높이 사 수상자로 선정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간 죽음에 대한 글을 주로 써온 알렉시예비치는 현재 새 책 '영원한 사냥의 훌륭한 사슴'의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다. 이번엔 사랑 이야기다. 다양한 세대의 남자와 여자가 그들 개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박성규기자 exculpate2@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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