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LG전자는 B2C 세트 업체(부품을 조립해 완제품을 생산하는 업체)가 아닙니다. 고객사의 수요에 철저하게 부응하는 B2B 업체가 되기 위해서는 '을'의 입장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이우종 LG전자 VC사업본부장이 최근 사내 게시판을 통해 직원들에게 전한 메시지다.
구본무 LG 회장이 지난 2012년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이 되려면 정면으로 부딪치고 뼛속까지 바꾸겠다는 마음으로 끝을 봐야 한다"며 변신을 선언한 지 3년여 와신상담 끝에 LG가 드디어 빛을 보기 시작했다.
자동차부품과 배터리 분야에서 대규모 수주가 잇따르고 LG그룹의 조직문화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재계에서는 "LG가 달라지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LG그룹은 지난 몇년간 전략부재, 성장성 정체 등에 대한 외부의 우려가 컸지만 이에 개의치 않고 자동차부품, 배터리, 올레드(OLED) 디스플레이 등 신사업에 묵묵히 투자해왔다. LG그룹은 그동안 사업구조 재편 및 투자로 스마트카 부품사업의 경우 'LG전자(인포테인먼트·모터 등)-LG화학(배터리)-LG이노텍(센서·LED)-LG디스플레이(차량용 디스플레이)'로 라인업을 완성했다. 에너지솔루션도 'LG전자(태양광모듈·ESS)-LG화학(배터리)-LG CNS(스마트마이크로그리드) 등으로 밸류체인을 꾸리고 영업을 강화하고 있다.
신사업 분야는 당장 '현금 장사'가 되지 않고 오히려 투자비용 때문에 적자가 나기도 했지만 구 회장의 지시로 투자를 지속했다.
최근 스마트카 시장 확대 및 파리 기후협약 이후 신재생에너지 관련 시장이 급성장 조짐을 보이면서 수면 밑에서 추진해온 변화가 가시적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투자본색'을 드러내는 점도 달라진 LG의 면모다. 그동안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존재감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던 LG는 최근 달라진 행보를 보이고 있다. LG화학이 동부팜한농 인수를 눈앞에 두고 있고 LG하우시스도 독일 건자재 회사인 호른슈흐사 인수 등을 검토하고 있다. LG전자 역시 자동차부품과 관련해 해외 업체들의 MA&를 고려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 역시 최근 통 큰 투자를 결정했다. LG디스플레이 파주사업장에 총 10조원에 달하는 6세대 중소형 OLED 공장 투자를 시작했다. 구미에도 1조500억원을 들여 중소형 OLED 라인 추가 투자가 진행되고 있다. 디스플레이의 경우 내년에도 공급과잉과 수요부족으로 '고난의 한해'가 예상되지만 오히려 앞선 제품에 대한 과감한 투자로 미래를 대비하는 차원이다.
LG그룹은 기술력 향상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 지난 몇년간 조직재편 및 투자를 통해 사업방향을 신사업으로 돌린 만큼 승부는 결국 기술력에서 날 것이기 때문이다. LG에 대한 시중의 '인상비중' 하나는 "기술력은 있는데 마케팅 능력은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B2B 사업은 기술력으로 고객사에 평가받는 게 결정적인 만큼 기술력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LG에 어울리는 사업구조다.
LG전자 VC사업본부 최근 조직개편을 단행해 HE·MC사업본부에서 연구소와 별개 조직으로 편성돼 있던 품질관리(QA) 부서를 연구소 조직으로 합쳤다. 이는 "B2B 사업에서는 품질관리도 연구개발(R&D)"이라는 경영진의 지론이 반영된 것이다. LG전자는 또 롤러블 TV 개발 마치고 양산에 대한 기술적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 정체된 TV 시장을 선도적 제품으로 넘어서겠다는 강력한 의지다.
LG화학의 경우 '배터리 1등'을 굳히기 위해 연구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연말 임원인사에서 배터리연구소장을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시켜 박차를 가했다. 한번 충전에 500㎞까지 운행 가능한 자동차용 배터리와 플렉시블 배터리 기술 개발에서 배터리 전쟁의 승부가 갈릴 것으로 LG화학은 보고 있다.
물론 과제는 있다. 한상범 LG디스플레이 사장이 17일 "내년이 디스플레이 산업의 생사를 가르는 중대기로"라고 밝혔듯이 시장 환경은 녹록하지 않다. 휴대폰 사업 역시 제대로 된 반등의 모습을 아직 보이지 못하고 있다. 한 민간연구소 소장은 "내년 한국 경제 모두가 마찬가지지만 LG야말로 탄력을 붙이느냐, 다시 후퇴하느냐는 갈림길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혜진·이종혁기자 hasi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