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는 여자의 전유물 편견 깬 조선시대 왕실 요리 담당 숙수들
귀양 갈때도 맛집 들렀던 허균
장도 직접 만들어 먹던 정약용
임금님 몰래 쇠고기 즐긴 이이
맛 탐닉한 조선남자의 맛있는 기록
세종 16년 의안대군 이화의 아들이자 충청도 병마도절제사이던 이교는 요리가 특기였다. 그는 중국 사신을 맞아 잔치를 하는데 상감마마 앞에서 요리를 할 사람이 없다는 요청에 다급히 서울로 올라온다.
태조 1년 장군 시절 자신을 따라다니며 밥을 해 주었던 이인수를 태조는 궁궐에서 음식을 관장하는 사옹에서 일하게 했다. 신하들은 신분이 미천한 그를 파면시키라고 했지만 태조는 신하들의 의견을 듣지 않고 자신의 곁에 그를 뒀다. 태조의 결단력(?) 덕분에 이인수는 '조선 시대 최초의 요리하는 남자'라는 타이틀을 갖게 됐다.
'요리하는 조선 남자'는 남녀의 역할이 엄격히 구분된 조선 사회에서 요리가 여성의 전유물일 것이란 편견을 깨고 요리 하는 남자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특히 궁중에서는 남자가 요리를 담당했다. 책에 따르면 세종 시대 명나라가 요리 만드는 처녀들을 공녀로 요구하자 궁중 요리는 남자의 영역이라 여자들이 아는 게 아니라며 당황했다는 기록이 있다. 왕실에서 요리를 담당했던 숙수들은 모두 남자였기 때문이다.
물론 집안에서 음식을 만드는 일을 담당했던 이들 대부분은 여성이었지만, 조선 남자 역시 음식을 맛보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요리를 하며 조선의 음식 문화 발전에 조연으로나마 기여를 했다. 저자는 요리가 여성의 전유물이 아니었다는 귀에 솔깃한 이야기를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조선 시대 음식을 사랑하고 탐닉했던 이들에 대한 기록을 바탕으로 조선의 음식 문화 전반을 살핀다.
음식에 탐닉한 대표적인 인물로 저자는 서거정과 허균을 꼽는다. 집현전 출신으로 여섯 명의 임금을 섬긴 서거정은 게를 사랑하고 차 마시는 것을 좋아했으며 뛰어난 글 솜씨로 맛있는 음식들을 노래했다. '홍길동전'의 작가 허균은 잘 사는 처가 덕에 맛의 호사를 누린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귀양을 갈 때도 맛있는 음식이 있는 장소를 골라 갔으며, 귀양 생활로 전과 같은 식생활을 즐기지 못하게 되자 자신이 과거 먹었던 먹거리들을 정리한 조선 전국의 식도락 리스트인 '도문대작'을 펴냈다.
정약용은 직접 온갖 요리를 해 먹었으며, 귀양을 가서는 참외 농사도 짓고 장도 직접 만들어 먹었다.
저자는 음식을 탐닉한 사람들과 함께 조선 시대 탐닉의 대상이 된 구체적인 음식에 대해서도 설명을 잊지 않는다. 조선 왕조는 소의 도살을 금지하는 것을 법으로 정했고, 이를 어기는 자들을 엄격하게 처벌했다. 농사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쇠고기를 먹을 경우 농사에 지장을 초래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조선 시대 쇠고기의 다른 이름은 금육(禁肉)이었다. 하지만 이런 이름이 무색하게끔 조선 사람들은 제사상에 쇠고기를 올리며 금육을 즐겨 먹었다. 금육을 먹지 않은 이도 있었으니, 바로 이황과 더불어 성리학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는 율곡 이이였다.
이밖에 조선 시대 가장 대중적으로 즐긴 음식으로 요리 방법만 6가지에 이르렀던 개고기, 웬만하면 부엌에는 얼씬도 안 했던 조선 남자들이 친히 깍아 먹었으며 심지어 밥 대신 먹기도 했던 조선시대 패스트푸드인 참외도 조선 시대 즐겨 먹었던 음식 중 하나였다. 시간을 거슬러 조선 시대 먹거리를 보여준 저자는 "이 책을 보시는 모든 이들이 행복하게 밥 먹는 시간을 맞이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당부했다. 1만5,000원 /박성규기자 exculpate2@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