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이 만난 사람] 강인수 현대경제연구원장

대기업, 혼자 다하는 타성 버리고 대등한 협업해야 혁신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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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금리 2년 걸쳐 3%대로 인상 전망…中 내수 공략방안도 찾아야

소비 증가율 1% 덫… 내수에 단기 치중해도 수출 중심 성장 지속을

스마트공장 몇개 늘리기식 눈앞 성과보다 긴호흡의 R&D투자 필요


"우리나라 대기업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자기가 해요. 될 성싶으면 사들이죠. 과거엔 성과가 있었지만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애플이나 샤오미를 보세요. 컬래버레이션(협업)을 잘해요. 대등한 지위의 협력 파트너를 인정할 줄 알아야 산업 생태계가 바뀝니다."국내 민간 싱크탱크의 대표주자 중 하나인 현대경제연구원의 강인수(사진) 원장은 지난 11일 서울 종로 현대그룹 사옥에서 진행한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 대기업은 내재화라는 타성이 남아 있다"며 "단순히 아웃소싱을 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말 그대로 동등하게 협업할 줄 알아야 시너지 효과가 나온다"고 말했다.

강 원장은 중국이 '중속성장'을 내걸면서 산업구조를 고도화하겠다고 밝힌 것을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하고 점점 산업구조가 중복될 가능성이 높다"며 "단기적으로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우리에게 굉장히 큰 부담"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우리나라 기업은 주어진 여건 아래에서는 옵티마이징(최적화)을 잘하지만 주어진 프레임을 바꾸진 못한다. 이제 큰 프레임을 바꾸겠다고 나서는 기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는 12월 미국이 금리 인상에 나설 경우 경제흐름은 어떻게 바뀔까. 강 원장은 "언제, 어떤 속도로, 어느 정도 기간에 올릴 것이냐가 미국 금리 인상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가장 중요하게 보는 고용지표가 지난달 기대치 이상으로 나왔으니 12월에도 취업자 수가 20만명가량 나오면 연내에 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높다. 그는 "최근 두 번의 전례에 비춰보면 최소 2년의 기간에 나눠 점진적으로 모두 3%포인트 정도 올렸다"며 "지금이 0~0.25%이니까 3%대까지 올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많은 국가가 양적 완화를 통해 통화전쟁에 나섰지만 유일하게 효과를 본 국가는 미국이다. 강 원장은 "미국이 금리를 정상화하려는 이유는 언젠가 '다운 턴(down-turn·경기하강)'으로 돌아설 미래에 대비해 금리라는 정책수단을 쓸 수 있도록 레버리지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금리 인상 충격에 우리나라는 "다른 신흥국보다 덜 취약하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미국 금리 인상이 예고된 사안이라면 중국 경제의 둔화는 예상하기 어려운 리스크다. 강 원장은 "우리나라의 대중국 수출의존도는 지난달 말까지 26%에 달한다. 여기서 정보기술(IT)·기계·철강 등 10대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86%(지난해 기준)"라며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수출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10%에 도달했다고 내수 중심으로 성장전략을 바꿨다. 중국이 수출을 많이 해야 우리도 수출이 따라 느는 구조인데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중국 공산당의 5중전회에서 나온 얘기를 보면 키워드가 놀랍게도 박근혜 정부가 내세운 화두와 비슷한 창조·혁신"이라며 우리나라와 산업구조가 중복될 가능성을 우려했다.

그는 "중국도 그렇지만 미국이나 일본도 수출이 전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 언저리"라며 "10%에 도달했으면 소득을 높이고 소비를 늘려 생산을 진작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필연적"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중국 이외의 대체시장을 적극 발굴하거나 GDP의 90%를 차지하는 중국 내수시장 공략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중국의 성장엔진이 식으면 중국이라는 호랑이 등에 올라탔던 한국은 직격탄을 맞는다. 강 원장은 "최근 추가경정예산안 효과로 4·4분기까지 회복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이지만 내년 1·4분기에는 성장세가 둔화될 것 같다"며 "특히 민간소비의 경우 최근 증가율이 '1%의 함정'에 빠져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도 중국처럼 '뉴노멀 시대'에 맞는 내수 중심의 성장전략을 마련해야 할까. 강 원장의 대답은 "포스코 문을 닫을 수 있나? 전혀 아니다"라며 단호했다. 그는 "소비가 늘어야 고용도 늘고 생산도 늘고 하는 게 맞다. 하지만 우리 정도의 규모에서 내수시장을 확대한다고 이미 투자된 어마어마한 장치산업의 공급을 받아줄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수출 제조업 중심의 성장전략은 포기해서도 안 되고 포기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현 정부의 내수 진작 노력에 대해서는 "급하니까. 단기적으로는 맞다"고 했다.

그래서 정부 주도의 산업구조 혁신을 강조한다. 강 원장은 독일 지멘스를 예로 들며 "독일도 우리나라의 제조업 3.0과 비슷한 인더스트리 4.0이라는 정책을 펴고 있다"며 "독일의 인건비는 일반적인 개발도상국에 비하면 26배나 비싸지만 이 차이를 기술력으로 극복했다. 생산 과정의 효율성을 높인 지멘스는 불량률이 0.002%로 거의 '제로(0)'에 가깝다"고 소개했다.

기업에도 따끔한 조언을 했다. 그는 "우리나라 기업은 주어진 여건에서는 최적화를 잘하지만 주어진 프레임을 바꾸는 혁신은 하지 못한다"며 "정부가 해야 할 부분도 있지만 기업들이 해야 하는 부분도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대표기업인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애플과 샤오미의 최근 패턴을 비교해보면 우리나라 산업구조의 문제를 여실히 알 수 있다. 애플이나 샤오미는 혁신적 아이디어를 가진 작은 기업과 협업을 통해 제품을 만들어낸다. 반면 우리 대기업은 모든 걸 자신들이 다 하려고 하니 삼성 생태계, 현대 생태계만 있고 혁신은 나오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강 원장은 세계시장에서 도태되지 않으려면 잠재성장률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급락하는 잠재성장률의 원인으로 강 원장은 급속하게 진행된 인구고령화와 내실 없는 연구개발(R&D) 투자를 꼽았다.

그는 "여성뿐 아니라 청년·고령층을 노동시장으로 견인하고 적극적인 이민유입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R&D 투자 규모는 GDP의 8%로 이스라엘을 빼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라고 하지만 내용을 잘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정부나 민간 R&D 모두 기존의 것을 약간 변형시켜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것이 대부분으로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투자는 거의 없다"고 비판했다.

강 원장은 긴 호흡을 강조했다. 그는 "벤치마킹을 할 때 속은 못 보고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 본다. 스마트 공장을 연내 몇 개 만드는 식의 정책이 바로 그것"이라며 "외형이나 가시적인 것을 만드는 것보다 왜 이렇게 바뀔 수밖에 없는지를 보고 성공한 기업의 메커니즘이 뭔지 따져보라. 공급 사이드에서 뭔가를 조정해 생산성을 높이는 것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He is…



△1961년 서울 △1985년 서울대 경제학 학사 △1991년 UCLA 경제학 석·박사 △1991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 △2003년 유엔개발계획(UNDP) 컨설턴트 △2007년 재정경제부 국세예규심사위원 △2009년 아시아개발은행(ADB) 컨설턴트, 기획재정부 관세심의위원 △2010년 숙명여대 경제경영연구소 소장 △2013년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민간자문위원 △1993년~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 △2009년~ 국제경제연구소 이사 △2010년~ 한국국제통상학회 부회장 △2015년~ 현대경제연구원 대표이사









TPP 가입 신중하게 접근하되 쌀개방 금지에 집착 말아야


한국 쌀 관세율 WTO서 검토 중
사실상 이미 개방했다는 의미
누적원산지 타격도 크지 않을 것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가입해야지요. 하지만 조급할 필요는 없습니다. 미국과 일본이 자동차와 농산물을 타협한 것처럼 우리도 신중히 접근하면 됩니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통상전문가인 강인수 현대경제연구원장은 갈수록 복잡해지는 통상질서 속에 한국이 가야 할 길을 명쾌하게 제시했다. 강 원장은 "TPP도, 역내포괄적동반자협정(RCEP)도 가입해야 한다"며 "하지만 누적원산지 개념이 우리가 맺은 자유무역협정(FTA)에 엄청난 타격을 줄 것이라는 주장은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강 원장은 우리나라를 두고 "국가 간 무역장벽이 허물어지는 세계사적 조류 속에서 최대 수혜국"이라고 지칭했다. 출발은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이다. 강 원장은 우리나라의 수출 중심 성공 신화를 두고 "GATT와 같은 다자체제로 교역 자유화가 공고히 돼가는 흐름에 지난 1985년 플라자 합의, 3저 호황(저유가·저금리·저환율)이 이어지면서 해방 이후 만성적인 무역적자 국가에서 무역흑자 국가로 탈바꿈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문제는 이 같은 성공 신화가 철저히 외부에서 주어진 조건이었다는 점이다. 3저 호황이 끝나고 대외여건이 나빠지자 외부에서 주어진 환경으로 쉽게 성장했던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강 원장은 "쉽게 돈을 번 기업들이 마구 투자를 했는데 그게 고부가가치화로 업그레이드를 한 게 아니라 한 대 있던 기계를 두 대로 늘리는 식의 단순 확대투자였다"고 말했다. 1993년 문민정부를 출범시킨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세계화'라는 화두를 들고 나온 것도 비약적으로 생산이 늘어난 공산품을 팔 수 있는 곳을 찾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진통 끝에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했으나 무역장벽을 허무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과잉공급을 이기지 못하고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터졌다. 환란이 종식된 후 2001년 WTO 제4차 각료회의 합의로 시작된 도하개발어젠다(DDA)를 계기로 통상협상은 다시 급물살을 타는 듯했지만 쉽게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

당시는 국지적인 지역무역협정(RTA)과 양자 간 자유무역협정(FTA)도 활발히 체결되던 시기다. 강 원장은 "지금이야 우리나라가 FTA의 선두주자이지만 불과 2007년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며 "WTO만 믿고 있던 탓"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FTA를 맺지 않았던 국가는 전 세계를 통틀어 몽골과 우리나라뿐이었다. 강 원장은 "참여정부 때 뒤늦게 FTA에 뛰어들었는데 동시다발적 FTA라는 용어가 나온 것도 이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강 원장은 TPP나 RCEP 같은 메가 RTA 중심으로 국제 통상질서가 재편되고 있는 격변의 시기인 만큼 쌀 개방 문제가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에서 제출한 관세율을 WTO에서 검토 중이라는 것은 이미 쌀 시장이 개방됐다는 것"이라며 "TPP에서 마치 쌀 시장을 개방 안 하는 것처럼 얘기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이어 "TPP 참여국가를 보면 한미 FTA 수준을 예외 없이 100% 수용할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국가별로 예외가 있을 것"이라며 "TPP 비준절차 2년간 잘 따져서 최대한 유리한 결과를 얻어내면 된다"고 조언했다.



/정리=김상훈기자 ksh25th@sed.co.kr

사진=권욱기자

대담=이연선 경제부 차장 bluedash@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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