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비즈] 기업 중복합격자 잡기 특명

영화관람서 여행·웰컴파티까지… "합격인재 이탈 막자" 구애 나선 기업들



공채 시즌이 끝날 무렵에는 갑과 을이 바뀐다. "붙여만 주면 열심히 하겠다"던 구직자들이 합격자의 신분으로 격상되면서 "다른 데 가지 말아달라"는 기업의 구애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중복 합격에 성공한 A급 인재들을 붙잡아두기 위해 기업 인사담당자들은 최고경영자(CEO)와의 만찬, 공짜 여행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짜내느라 고심한다. 자녀의 직장 선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모들까지 이 같은 공세의 대상이 된다.

13일 재계에 따르면 A그룹 계열사 인사담당자들은 얼마 전 그룹으로부터 "합격자들의 이탈을 막을 프로그램을 준비하라"는 특명을 받았다. 지난달 대졸 공채 합격자를 발표한 후 내년 초인 입사일이 오기 전까지 합격자들이 눈을 돌릴 가능성이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서다. 이 회사 관계자는 "단체 영화관람, 합격자 부모들을 대상으로 한 떡 돌리기 같은 기본 프로그램 외에도 참신한 이탈 방지 프로그램을 구상하느라 골치가 아프다"고 전했다.

대표적인 이탈 방지 프로그램은 단체 활동이다.


㈜한화는 지난해 산행과 김장 봉사활동 등을 통해 합격자들과 공식 입사 전부터 관계를 다졌다. 현대오일뱅크는 올해 문종박 사장과의 합격자 환영만찬을 준비했다. 뿐만 아니라 2박 3일간의 제주도 탐방을 통해 합격자들을 단단히 붙잡을 계획이다. 현대오일뱅크 관계자는 "합격자를 발표한 후 입사 전까지는 갑과 을이 바뀌는 셈"이라고 귀띔했다.

얼굴을 맞댈수록 소속감도 커지기 마련이다.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은 매년 합격자들을 환영하는 '웰컴 디너' 행사에서 일일이 테이블을 돌며 예비 신입사원들과 대화를 나눈다.

이외에도 효과적인 방법은 합격자 부모를 공략하는 방법이다.

매년 부모님 동반의 '웰컴 파티'를 열고 있는 코오롱은 올해도 호텔에서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각 계열사 CEO 사장들이 참석해 회사 소개, 축하 공연이 이어지는 가운데 합격자들이 부모님에게 감사를 표하는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 코오롱 관계자는 "자녀의 감사 인사에 눈물을 흘리는 부모님들도 있다"며 "이 같은 행사를 통해 관계를 돈독히 한다"고 설명했다.

이보다 강도 높은 이탈 방지 프로그램도 있다. 바로 미리 더 뽑는 것이다. 지방의 한 민간은행은 9월 최종합격자를 발표했지만 10명 중 4명이 입사를 포기하는 바람에 큰 타격을 받았다. 업무 강도가 낮고 정년이 보장되는 농협,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수출입은행 등으로 인재가 몰리다 보니 생긴 일이다. 또 다른 민간은행 관계자는 합격 포기율을 밝히지 않았지만 "이탈자가 종종 발생해 채용 인원수를 원래 계획보다 수 명씩 늘린다"고 전했다.

반면 입사 선호도가 대기업 중에서도 가장 높은 기업은 신입사원 연수 전까지 합격자들과의 이벤트를 따로 마련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대자동차·삼성전자·SK이노베이션 등이 대표적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워낙 채용 규모도 큰데다 합격 포기율이 미미하다 보니 별다른 행사가 없다"고 설명했다. SK이노베이션도 과거에는 합격자 부모 초청행사를 치렀지만 2009년께부터는 없어졌다. 취업난이 극심해지기 시작한 시점부턴 합격 포기율도 낮아져 별다른 '관리'가 필요 없어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유주희기자 ginger@sed.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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