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챔피언 프로그램’의 한 장면
영화 ‘챔피언 프로그램’의 한 장면
승자 독식(Winner takes it all). 스포츠의 세계만큼 이 단어가 어울리는 곳은 없을 것이다. 이 세계에선 단 한 명의 승자가 다른 나머지 모두의 것을 합친 것보다 더 큰 명예와 부를 얻는다. 그렇기에 많은 선수들이 그 한 명의 승자가 자신이기를 꿈꾸며 모든 것을 바친다. 문제는 반드시 흘린 땀방울의 수만 따져 승자가 결정되지는 않는다는 지점에 있을 것 같다. 극도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이 세계를 제패하려면 노력뿐만 아니라 운도 좋아야 한다. 더욱 안타깝게도 타고난 재능은 필수다. 만약 ‘질 수밖에 없게 태어난’ 범인(凡人)이 ‘전설’이 되기를 꿈꾼다면 비극의 발생은 불가피해지는 것이다.
영화 ‘챔피언 프로그램(사진)’은 바로 이처럼 무모한 욕망이 불러오는 비극에 대해 말한다. 사이클 영웅으로 칭송받았지만 훗날 모든 승리가 부정적 방법(도핑)에 의한 결과물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바닥으로 수직 낙하한 랜스 암스트롱(벤 포스터 분)의 유명한 실화를 따라가면서. 영화에도 등장하는 스포츠 저널리스트 데이빗 월시의 논픽션 ‘일곱 가지 대죄 : 랜스 암스트롱에 대한 나의 추적’을 원작으로 하는 이야기는 마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카루스의 추락’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에 따르면 랜스 암스트롱이 승자가 될 수 없는 신체 조건을 타고난 것이 비극의 첫 번째 원인이다. 스포츠 의학 전문가이자 훗날 암스트롱의 조력자가 되는 미켈레 페라리는 암스트롱을 향해 “당신은 질 수밖에 없게 태어났다”고 단정할 정도다.
하지만 암스트롱은 승자가 되고 싶었다. 특히 고환암이 발병해 죽음의 위기를 겪은 후에는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승리를 손에 넣겠다고 결심한다. 그렇게 그는 미켈레가 고안한 ‘이길 수밖에 없는’ 프로그램을 받아들이고, 3,500km 의 거리를 3주 동안 쉬지 않고 달리는 극한의 레이스 ‘투르 드 프랑스’를 7번 연속 제패한다. 암을 극복했을 뿐 아니라 병치레한 적 없는 건강한 사람도 완주하기 힘들다는 지옥의 레이스를 달리며 랜스 암스트롱은 인간 승리의 아이콘이자, ‘절대로 사기꾼이 되어서는 안 되는 영웅’이 되기에 이른다.
영웅의 욕망이 끝없었다는 점은 비극의 또 다른 씨앗이다. 만약 적절한 선에서 멈췄다면 그는 영원히 ‘전설’로 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욕망을 제어하지 못했고 추락의 서막을 연다.
영화의 가장 미덕은 잘 알려진 영웅 혹은 사기꾼의 실화를 다루면서 암스트롱이 과연 어떤 인간인지에 대해 섣부른 판단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화는 승리를 거듭하며 점점 오만하게 변해가는 암스트롱의 표정을 정밀하게 포착하면서도, 암 투병 환자들을 위해서라도 자신은 계속 ‘영웅’으로 남아야 한다는 그의 진정성 또한 외면하지 않고 전부 담아낸다. 승자에게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스포츠 세계의 극한 경쟁과 결코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타고난 재능’이라는 벽을 어떻게든 넘어서려 했던 암스트롱의 모습은 가끔 인간적으로 그려 관객을 당황시키는 한편 ‘왜 도핑을 하면 안 되느냐’라는 윤리적 질문에 대해 해답을 들려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메시지는 물론 영화적 재미도 놓치지 않았다는 점도 훌륭하다. 이미 잘 알려진 실화를 다루고 있지만 영화가 제공하는 긴박함과 긴장감은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 영화는 마치 사건을 실시간으로 따라가고 있다는 느낌마저 주는데, 제작진과 배우들의 힘이 컸다. 일례로 스티븐 프리어스 감독은 암스트롱과 그 팀이 타던 자전거와 똑같은 모델을 찾는 데만 꼬박 4개월을 보냈다고 한다. 특히 수십 명의 사이클 선수들과 협업해 재현한 ‘투르 드 프랑스’는 한 사이클 관계자로부터 “내 기억이 그대로 스크린에 옮겨진 것 같다”는 극찬을 받아냈다는 후문이다. 28일 개봉.
/김경미기자 kmki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