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에서 해외법인 관리와 기획 업무, 그룹 비서실 등 핵심 요직을 두루 거쳐 중견기업으로 자리를 옮겨 '잠'이라는 키워드로 블루오션 개척에 나선 이가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서강호(65·사진) 이브자리 대표다. 서 대표는 대한민국 대표 기업인 삼성그룹에서 익힌 감각과 경영 능력을 바탕으로 국내 1위 침구기업인 이브자리의 혁신과 도전을 이끌고 있다.
지난 4일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이브자리 본사에서 서울경제신문 취재진을 만난 서 대표는 "단순히 이불이나 베개 등 침구를 파는 회사가 아니라 질 좋은 잠을 제공하는 '솔루션 프로바이더(provider)'로 도약할 것"이라며 "깔고 베는 침구 뿐만 아니라 수면과 관련된 5감의 모든 소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진정한 잠의 동반자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수출은 곧 애국'이었던 1960~1970년대 학창 시절을 보낸 그는 1975년 삼성그룹 공채 16기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다. 삼성물산에서 4년간 대미 섬유 수출을 담당하다가 관리 업무를 인정 받아 해외 법인을 관리하는 해외관리과에서 3년간 일했다. 이후 업무 능력을 인정 받아 그룹 기획실과 비서실로 차출됐고 일본에서 10년 넘게 주재원 생활을 했다.
2012년 서 대표의 삶에 새로운 이정표가 생겼다. 이브자리 대표로 자리를 옮긴 것. 보수적인 분위기인 침구업계, 그것도 창립 이후 30여년간 한번도 외부 인사에게 경영을 맡긴 일이 없는 이브자리가 외부인사를 영입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서 대표가 둥지를 튼 지 4년이 다 돼 가는 지금 업계의 평가는 상당히 긍정적이다. 이브자리는 침구 생산기업이라는 전통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지난해 개인 맞춤형 수면 전문 브랜드인 '슬립앤슬립(Sleep & Sleep)'으로 새로운 도약을 선언했다.
"일본 주재원 생활을 하면서 일본의 강소기업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습니다. 창업자인 고춘홍 회장과는 ROTC 동기에다 마라톤 동호회에서 자주 하면서 인연을 맺었는데 대표직 제안을 받고 이브자리에 와 보니 일본 교세라의 아메바 경영처럼 조직별로 책임관리가 이뤄지고 있더군요. 대기업의 시스템 경영에 익숙해 있던 저에게는 큰 감동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강조하는 '질 좋은 잠을 제공하는 솔루션 프로바이더는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까. 그는 수면 시장의 급속한 성장 가능성에 주목한다. 서 대표는 "1인당 국민소득이 2만5,000달러를 넘어가면 숙면, 즉 건강한 잠자리에 대한 수요가 증가한다는 게 독일, 일본 등 선진국 시장에서 확인됐다"면서 "수면 시장의 성장에 대비해 침구 전문 회사에서 침실 전문 유통업체로 도약하는 동시에 개인 맞춤형 수면 시장에 대한 공략을 가속화 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무기가 바로 '슬립앤슬립'이다. "예전에는 이불이라고 하면 주로 패턴이나 디자인만 보고 구매를 결정했지만 지금은 어떤 소재인지, 또 나와 맞는 침구인지 꼼꼼하게 따져서 소비하는 경향이 강해졌다"며 "이는 바로 고객이 자신에게 맞는 질 좋은 잠을 요구하면서 이에 맞는 제품과 서비스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년 창립 40돌을 맞는 이브자리는 슬립앤슬립을 지렛대로 삼아 새로운 도약에 나설 계획이다. 서 대표는 "슬립앤슬립 매장을 연말까지 82개를 확보하고 내년에는 100개를 추가해 규모의 경제를 이룰 것"이라며 "백화점에 입점해 고급 이미지를 구축하는 한편 중장기적으로는 해외 시장에도 진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올해 매출 2,000억원에서 내년에는 3,000억원 수준으로 끌어올릴 방침이다. /정민정기자 jminj@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