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강남도서관에서 열린 ‘조선왕조실록으로 보는 나라 살림살이’에서 김인호(사진) 광운대 교수가 ‘조선시대 가계부’를 주제로 강의를 하고 있다. /사진=백상경제연구원
“임진왜란 이전의 조선은 돈이 도는 사회가 아니었어요. 물건을 받은 만큼 기록해 놨다가 다시 돌려주는 물물교환 경제사회라고 할 수 있어요. 16세기 이탈리아에 상업이 번창하면서 르네상스를 주도했던 것과는 차이가 크지요.” 지난 12일 강남도서관에서 열린 고인돌 강좌 ‘조선왕조실록으로 보는 나라 살림살이’를 맡은 김인호(사진) 광운대 교양학부 교수는 1565년 임진왜란 전 조선의 문신인 미암 유희춘이 남긴 미암일기를 통해 조선시대 경제의 현황을 설명해 나갔다.
미암일기에는 반찬, 먹거리, 종이 등 생필품을 누구에게 받았으며 얼마나 받았는지 등에 대한 일주일 치의 기록이 남아있다. 마치 오늘날의 가계부를 연상시키지만 한가지 빠진 것이 있다. 바로 상품에 대한 금액이다.
김 교수는 조선시대의 기록물을 통해 조선시대의 경제생활의 구조를 풀어나갔다. “미암일기에는 무엇을 누구에게 얼마나 받았는지에 대한 정보는 남아있지만 얼마인지, 즉 돈에 대한 기록은 찾기 어려워요. 요즈음 결혼식 축의금처럼 준 만큼 돌려주는 부조의 성격이 강했던 것이죠. 이는 조선시대가 상업을 장려하지 않는 사회였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어요.”
농업 중심 사회였던 조선은 백성들에게 근검절약을 강조하기도 했다는 것. “실학자 유용헌이 남긴 말에 따르면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먹는 것 입는 것 그리고 장례용품 뿐이다. 그 외의 모든 것은 사치와 욕망의 산물이며, 사람을 괴롭히고 사람을 힘들게 하는 마물(魔物)이라고 했어요. 농업사회에서는 소비가 곧 사치라는 의미였어요.”
김 교수는 조선시대 법전인 ‘속욕전’을 통해 국가가 어떻게 인간의 욕망과 살림살이를 통제했는지를 설명했다. “속욕전에 보면 ‘요와 이불은 모두 면포를 쓰고 능금단자는 쓸 수 없다. 신부의 옷과 징식은 집에 있는 것에 맞추고 사라능단을 절대 쓰지말라’고 기록돼 있어요. 상업을 법으로 엄격하게 규제하던 시대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서민들의 생활에서도 음주가무 등을 사치라며 법으로 규정해 놓고 있어요.”
강의는 조선 전기의 경제구조와 삶의 방식에 대해 역사적 기록으로 풀어서 설명하고 상업을 규제할 수 밖에 없었던 사정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나갔다. 김 교수는 “서민들은 20명이상 모여 술을 마시는 것도 법으로 금지해 놓고 엄격하게 단속하던 시대가 바로 조선전기였다”면서 “요즘으로 치면 회식은 꿈도 꾸지 못했다. 이른바 절약만이 미덕인 사회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왕도 무명옷에 짚신을 신고 근검절약의 모범을 보였으며, 흉년이 들면 반찬 가짓수를 줄이기도 했다. 돈을 벌 수 없는 사회구조에서 성공하는 삶이란 결국 공부를 해서 관직을 얻는 길밖에 없었다”며 “우리가 학벌을 중시하고 창업을 꺼리는 이유를 파고들어 가다 보면 상업을 억제하던 조선시대의 사고방식이 전해 내려오기 때문이다. 세대 간의 갈등도 근검절약 정신을 어릴 때부터 배워왔던 장년층과 소비문화에 노출된 젊은 세대와의 사고방식 차이에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날 강좌에 참석한 30여명의 수강생 중에는 장년층 남성이 적지 않았다. 그동안 공공도서관의 주요 이용계층은 중장년 여성이 대부분이었다면 요즈음 도서관에서는 장년층의 관심 주제인 역사, 고전 등을 주제로 강좌가 개설되면서 그들의 지적 관심사를 충족시켜주고 있다는 것. 정년 퇴직 후 15년째 꾸준히 도서관을 찾고 있다는 70대 중반의 김 모씨는 “정년 퇴직 후 1년쯤 놀고 났더니 사람이 바보가 되는 것 같았다. 우연히 도서관에 들러 책을 빌려 읽으니 지식이 가지치기를 하는 것 같아 재미가 있었다”며 “요즈음 인문학 강좌는 그동안 독학으로 공부했던 지식을 재확인하고 잘못 이해한 부분을 교정하는 역할도 한다”고 말했다. 뒤늦게 공부하기가 어렵지는 않느냐 질문에 그는 “공부하는 데 때가 있느냐”면서 “도서관에 오면 스스로 계속 발전하는 느낌이 들고, 인문학 공부를 하면서 아들 손자와 이야기할 때에도 주제가 다양하고 폭이 넓어진다”며 활짝 웃었다.
조선왕조실록으로 보는 나라 살림살이는 총 5강으로 5주간 진행된다. 1강. 농민이 천하의 근본이다, 2강. 조선시대 가계부, 3강. 공방전-돈이 돌면 세상이 바뀐다, 4강. 경제개혁론:정약용, 박제가, 아담 스미스, 5강. 조선의 3개 경제개혁: 대동법, 균역법, 호포제 등으로 구성되어있다.
한편, 올해 3회째인 고인돌(고전인문학이돌아오다)은 서울시교육청 도서관 21곳과 서울시 중고등학교 30여 곳에서 12월까지 잇따라 열리고 있다. 세부 프로그램은 서울시교육청 평생교육포털 에버러닝(everlearning.sen.go.kr)을 참고하면 된다. 강좌는 무료이며 신청은 해당 도서관으로 문의하면 된다./장선화 백상경제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