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사에서 고대 로마제국의 멸망 원인은 두고두고 논쟁거리다. 주장 중 하나가 '야만족의 이동'이다. 게르만족의 대거 이동이 로마의 사회 시스템을 망가뜨리고 결국은 멸망으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게르만족은 현재의 독일인이다. 최근 이런 논란이 시리아 난민 문제로 해 다시 불거졌다. 난민을 막지 않으면 현대의 로마제국인 유럽연합(EU)이 무너진다는 것이다. 독일에서 특히 이런 목소리가 큰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덧붙여 시리아 난민사태에는 유럽이나 미국의 책임이 더 크다.
어느 시대·사회에도 이방인에 대한 배척은 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다른 각도에서 한번 살펴보자. 한 사회가 건강한지 아닌지를 보는 척도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방인에 대한 태도로도 판별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고려 초기 쌍기라는 사람과 조선 말기 기독교 선교사들을 들 수 있다. 서기 958년 중국인 쌍기는 고려에 과거제도를 전하면서 관료제도를 정비하는 데 도움을 줬다. 과거제는 고려와 조선에 걸쳐 1,000년 가까이 유지됐고 지금도 우수한 문화 전통으로 평가받는다. 반면 국가의 운명이 기울고 있던 조선 말기 한반도에 들어온 외국인 선교사들은 박해를 받고 죽임을 당했다.
최근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으로 임명된 한 스페인인을 두고 말들이 많다. 한국 미술계를 무시하는 처사라는 불만부터 '미술계의 히딩크'라며 극찬하는 측까지 다양하다. 외국인 미술관장 한 명 때문에 국가가 흔들린다면 그것은 국가 자체의 문제다. 한국 미술계가 그렇게 허룩하다는 말인가. 새로운 피와 사상의 수혈은 항상 필요하다. 우리가 책을 읽고 여행을 떠나며 신진 인사를 받아들이는 이유다. 스페인인 관장이 미술계에 도움을 주기를 바란다.
로마제국은 시조라는 로물루스가 나라를 세울 때부터 이민족을 흡수하면서 성장했다. 에트루리아·그리스·갈리아·이스파니아(지금의 스페인)·아랍 등이 그들이었다. 로마제국이 게르만족 난민 때문에 망했다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다. 무려 1,200년을 보낸 후 쇠퇴한 기력은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았고 이어 새로운 유럽이 탄생했다.
두려워할 것은 야만족의 이동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사회의 건강 상태를 고민해야 한다. 혹자는 난민과 엘리트를 구분해 받아들이자는 이야기도 한다. '맑은 공기를 위해 창문을 열면 파리도 들어온다'는 속담처럼 둘은 결국 같은 의미다. 미국에서 난민 대접을 받고 싶은 사람이 없을 것처럼 우리도 이방인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 이미 국내에서는 많은 외국인이 살고 있다. 한국을 좋아해 찾아온 손님이 고맙다. 한국이 더욱 좋은 사회가 돼 이곳에서 살고 일하는 이방인들이 늘어나기를 기대한다.
최수문 문화레저부 차장 chs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