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오는 14일부터 23일까지 이어지는 박근혜 대통령의 해외 순방 일정에 동행하지 않기로 했다. 산업부 장관이 대통령의 해외 순방에 합류하지 않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13일 "윤 장관이 VIP의 해외 방문 수행단에서 빠지기로 했다"며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의 국회 통과가 화급하다고 보고 내린 결정"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14일 출국해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를 비롯한 3개 다자회의 참석차 터키·필리핀·말레이시아를 차례로 방문하고 23일 귀국할 예정이다. 대통령 해외 순방 때 외교·산업 장관은 바늘과 실처럼 한 묶음으로 대통령을 보좌하는 게 관례다. 이번 순방처럼 다자회의뿐만 아니라 양자회의 때도 두 장관은 외교와 경제·통상 현안 조율을 실무적으로 뒷받침한다.
윤 장관의 순방 불참은 16일 여야정 한중 FTA 협의 일정이 잡힌 게 결정적이다. 여야정 협의에 주무장관이 빠진다면 '국회 비준안처리가 절실하다'는 정부 논리가 옹색해지는 탓이다. 한중 FTA 비준이 정부가 강력히 요구하는 것처럼 그다지 시급한 사안이 아닌 것으로 비칠 소지가 있다.
그러나 시간은 상당히 촉박하다. 양국 정부가 합의한 연내 FTA를 발효하기 위해서는 26일이 국회 비준의 사실상 데드라인이다. 중국 측 통보를 비롯한 FTA 발효의 사전적 절차를 역으로 산출한 결과다.
국내 체류에는 박 대통령의 뜻도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은 최근 "한중 FTA가 발효되지 못하면 연내 관세인하가 안 돼 제조업 분야에서 하루 40억원(연간 1조5,000억원)의 손해가 불가피하다"며 국회를 압박해왔다. 윤 장관이 해외 순방 보좌 대신 책임지고 비준안을 통과시키라는 주문이다. 일각에서는 내년 총선 출마를 위한 연이은 장관 교체로 악화되고 있는 여론을 의식한 조치라는 분석도 나온다. 청와대는 지난 12일 당분간 개각은 없다며 경제 살리기에 집중하겠다고 발표했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해 윤 장관도 총선 출마가 유력시되는 상황에서 이번 경제팀이 한중 FTA마저도 매조지하지 못하면 여론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세종=이상훈기자 shlee@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