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저항·직설의 정치

"닭 목 비틀어도 새벽온다" "日 버르장머리 고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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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은 한국 정치사에 남을 다양한 어록들을 남겼다. 김 전 대통령이 민자당 총재 시절인 지난 1992년 10월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민자당 중앙위원회 제2차 전체회의에서 주먹을 불끈 쥐며 연설하고 있다.

1983년 단식투쟁때, "나를 시체로 만든 뒤 해외로 부쳐라"

1993년 대통령 취임 직후, "추석때 떡값은 물론 찻값도 안 받겠다"

민주화·개혁의지 반영… 강경발언에 외교적 파장도


22일 서거한 김영삼 전 대통령은 한국 정치사에 남을 다양한 어록들을 남겼다. 그의 정치 좌우명 '대도무문(大道無門·바른길로 나갈 때는 거칠 것이 없다)처럼 그가 남긴 어록들은 거침없고 직설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민주화 투쟁 당시=가장 대표적인 어록으로 꼽히는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지난 1979년 10월 박정희 정권을 비판한 발언이 발단이 돼 헌정사상 최초로 국회의원직을 제명당한 상황에서 나왔다.


당시 제1야당인 신민당 총재였던 김 전 대통령은 미국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미국에 박정희 정권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것을 요구해 파문을 일으켰다. 이에 당시 여당인 공화당은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의원직 제명안을 처리했다.

이때 김 전 대통령은 "순교의 언덕, 절두산을 바라보는 이 국회의사당에서 나의 목을 자른 공화당 정권의 폭거는 저 절두산이 준 역사의 의미를 부여할 것이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저항 의지와 함께 민주화에 대한 확신을 나타냈다.

1983년 광주민주화운동 3주기를 맞아 가택연금 상태에서 전두환 정권에 대한 단식농성을 벌이던 중에는 "나를 해외로 보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나를 시체로 만든 뒤에 해외로 부치면 된다"며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1990년 통일민주당 총재 시절에는 여당인 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 3당 합당 결정에 대해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인생에서 투쟁의 대상이던 여당과의 합당에 대한 명분을 부여한 발언이자 그의 권력 의지가 드러난 발언으로 평가된다.

◇개혁 의지=1993년 2월 대통령 취임사에서는 "신한국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우리 다 함께 고통을 분담하자"며 개혁에 동참할 것을 촉구했다. 같은 해 3월4일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는 "추석 때 떡값은 물론 찻값이라도 받지 않을 것"이라며 당시 만연해 있던 정치자금 관행 개혁 의지를 나타냈다.

개혁의 일환으로 대학입시 비리에 대한 사정작업이 한창이던 당시 최측근이던 최형우 민자당 사무총장의 아들이 대학에 부정 입학한 사실이 파장을 일으켰다. 이에 김 전 대통령은 "우째 이런 일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 말은 참담하고 황당한 심경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유행어가 됐다.

◇강경 발언으로 파장도=김 전 대통령은 1995년 당시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과 한중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일본 정치인들의 거듭된 망언에 대해 "이번 기회에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발언해 외교적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2008년 당시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한 김무성 의원(현 새누리당 대표)을 방문한 자리에서도 당의 공천심사를 비판하면서 "버르장머리를 고쳐줘야 한다"고 일갈했다.

/박경훈기자 socool@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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