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PP '완전 누적 원산지' 적용… '회원국 무관세' 더 큰 파괴력

■ 뉴질랜드 공개 협정문 보니


한미FTA보다 수준 높은 시장개방 드러나

일부 기계·석유화학은 발효즉시 관세 철폐

국영기업 특혜금지 등 韓에 불리 조항 많아

세부 품목별 분석 등 신중한 협상전략 필요



세계 무역 지형을 뒤흔들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한미 FTA와 버금가거나 일부는 보다 높은 수준의 시장개방인 것으로 파악됐다. 석유화학 제품과 일부 기계 등의 품목은 TPP 발효 즉시 관세가 철폐돼 우리 수출 기업에 피해가 예상된다. 특히 당초 알려진 것과 달리 '완전누적원산지' 개념을 적용하기로 해 12개 회원국이 누리는 무관세 통상 고속도로의 파괴력이 훨씬 커져 TPP에서 배제되면 큰 타격이 예상된다. 또 우리에게 불리한 조항으로 알려진 국영기업 우대 금지와 수산물 보조금 금지 등의 조항도 예상대로 포함돼 향후 TPP 가입 때 협상에 난항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5일 정부 관계자 등에 따르면 TPP에 참여한 12개국 가운데 뉴질랜드가 이런 내용을 담은 협정문을 가장 먼저 공개했다. 이에 따라 산업통상자원부는 관계부처 및 연구기관들과 함께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협정문 분석작업에 돌입했다. TPP의 관세철폐율은 국가별로 95~100%로 현존하는 다자간 무역협정 가운데 가장 개방 수준이 높다. 특히 일본의 관세철폐율은 100%로 한미 FTA(99.8%)의 수준을 넘어선 시장 개방을 한 것으로 보인다.

총 30개 챕터로 구성된 협정문을 보면 상품 양허뿐만 아니라 서비스와 지식재산권 보호 등 규범 분야의 내용도 한미 FTA 수준보다 한 단계 나아갔다.

협정문에 따르면 TPP 회원국은 역외국가에서 원재료 일부를 역내국으로 들여와 일정 수준 이상의 부가가치만 만들면 역내 산으로 인정하는 '완전누적원산지'를 적용하기로 했다. 12개 회원국 안에서 생산된 것만 자국의 생산물로 인정하는 '누적원산지' 조항의 파괴력이 극대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주요 품목별로 역내 원산지 비율이 얼마나 인정될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개방수준과 관련 제조업 분야를 보면 우리 수출 산업의 명암이 확연히 엇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과 우리가 경합하고 있는 자동차의 경우 일본 제품에 매기는 미국 관세는 20년에 걸쳐 철폐돼 그나마 여파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일부 기계 및 석유화학분야의 제트유·폴리아세탈수지·에폭시수지 등의 품목은 TPP 발효 즉시 관세가 없어진다. 우리 기업의 피해가 예상되는 대목이다.

규범은 한미 FTA를 뛰어넘는 수준으로 평가된다. 주요 내용은 국영기업(정부가 지분 50% 보유 혹은 의결권 50% 행사)이 상품과 서비스를 판매하는 상업활동을 할 때 특혜(보조금 지급, 부채 탕감, 저렴한 금리 적용 등)를 받아 상대국 기업에 불이익이 초래되면 곧장 분쟁조정절차에 돌입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TPP는 다만 매출이 3,000억원 미만이거나 자국에서만 서비스를 판매하는 경우는 국영기업에서 빼기로 했다. 국영기업이 많은 베트남의 주장을 받아들인 결과다. 주목할 대목은 이런 예외조항 외에 별도의 '유보 리스트'를 둬 여기에 들어가면 국영기업 적용에서 당분간 제외하기로 한 점. 우리로서는 협상 때 이를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김수동 산업연구원 박사는 "관세철폐 기간 등에 따라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TPP는 가장 높은 수준의 통상협정에 가깝다"며 "TPP에 안 들어갔을 때 글로벌 밸류체인에서 빠지는 등의 불이익이 있는 만큼 가입 협상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중한 전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정인교 인하대 교수는 "TPP의 경제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추가 가입국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우리가 안달할 이유가 없다"며 "준비를 철저히 해 협상을 잘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상훈·구경우기자 shlee@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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