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은 광복 이후 전쟁의 폐허와 가난의 질곡에서 대한민국을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키워낸 주력 성장엔진이다. 경제개발5개년계획과 철강·조선·자동차 등 수출 중심 제조업 육성책은 경제성장의 견인차이자 고용창출의 1등 공신이었다. 그러나 전 세계 교역량 감소, 유가 하락, 상대적 원화 강세의 여파로 수출이라는 성장엔진이 차갑게 식으면서 '메이드 인 코리아'의 위상마저 흔들리고 있다. 무역 1조달러 국가라는 타이틀도 지난 2010년 이후 5년 만에 반납해야 할 처지다. 수출전략이 어려움에 부딪히자 정부도 올해 남은 기간 성장의 키를 내수 중심으로 선회했다.
25일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국내총생산(GDP)에서 순수출(수출-수입)의 기여도는 5년 만에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GDP의 순수출 기여도는 3·4분기까지 누적으로 -1.0%포인트를 기록했다. 순수출 기여도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 -1.4%포인트를 기록한 후 4년 동안 0.5~1.5%포인트를 유지해왔다.
수출이 휘청대면서 올해 무역 1조달러 달성도 사실상 무산됐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무역규모는 9월 누적 기준 6,974억달러에 불과하다. 수출 증가율이 전년 대비 9개월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보인 영향이다. 수출 증가율은 10월에도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앞으로 무역여건이 뚜렷하게 개선되지 않는다면 남은 3개월 교역분을 합쳐도 1조달러 달성이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수출이 기대만큼 힘을 쓰지 못하면서 정부 정책도 사실상 수출에서 내수로 돌아섰다. 기재부는 이날 배포한 '2015년 GDP 흐름의 주요 특징과 평가' 자료에서 "세계 교역량 정체, 중국 경기둔화 등으로 수출부진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당분간 내수 중심 성장이 불가피한 만큼 3·4분기의 회복세가 4·4분기에도 유지·확대될 수 있도록 정책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올해 목표로 한 3%대 성장률 달성을 위해 내수 중심의 단기 부양에 주력할 것임을 사실상 선언한 것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내수와 수출이 맞물려 돌아가야 경제가 선순환하며 지속 성장할 수 있는데 내수 중심으로 경제를 운용하는 전략은 단기적으로는 몰라도 중장기적으로는 위험하다는 지적이다. KOTRA 사장을 지낸 오영호 공학한림원 회장은 "현재 우리나라 경제규모에서 내수만의 외끌이 정책으로는 성장의 한계가 분명하다"며 "제조업 중심의 수출에 무게중심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무역 1조달러가 붕괴되는 걸 보면서도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며 "과거처럼 낙수효과가 크지는 않지만 고용창출이나 경제에 미치는 선순환도 수출이 크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김정곤·구경우기자 mckids@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