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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이 글로벌 미디어 공룡인 컴캐스트와 페이팔 창업자인 피터 틸 등과 손잡고 가상현실(VR) 콘텐츠를 제작하는 벤처기업에 600만달러(약 70억4,000만원)를 공동 투자한 것으로 확인됐다. 영화·애니메이션·게임 같은 VR 콘텐츠의 성장을 촉진해 차세대 미디어로 손꼽히는 VR 생태계를 선점하겠다는 의도다.
7일 삼성그룹에 따르면 삼성벤처투자는 컴캐스트·HTC 등과 함께 미국 '바오밥 스튜디오'에 600만달러를 최근 투자했다.
삼성이 주도한 이번 투자에는 페이팔 창업자인 피터 틸이나 소셜게임 회사 징가의 창업자 마크 핀커스 같은 실리콘밸리 유명 투자자들도 대거 참여했다. 바오밥은 VR기기를 이용해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든다.
이들의 첫 작품 '인베이전!'은 현재 삼성전자 VR 콘텐츠 서비스인 밀크VR를 통해 볼 수 있으며 내년에도 작품 출시가 이어질 예정이다.
이번 투자는 VR 생태계를 주도하기 위한 삼성의 선제적 움직임이다. 한국정보화진흥원에 따르면 VR 시장은 오는 2030년께 1조4,000억달러 규모를 넘길 것으로 기대된다.
삼성은 하드웨어(기어VR)부터 콘텐츠 제작장비(전방위 360도 카메라), 콘텐츠에 이르는 VR 생태계를 장악하겠다는 목표를 세워놓았다. VR 콘컨텐츠를 이용할 수 있는 온라인플랫폼인 밀크VR 서비스도 이런 행보의 연장선상에 있다.
특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해 방한한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와 만나 VR기기 관련 협력강화를 논의할 정도로 큰 관심을 두고 있다. 최근에도 VR 사업에 대해 더욱 속도를 내달라고 임원들에게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하드웨어에 치우친 삼성의 역량을 보완할 수 있도록 콘텐츠 같은 소프트웨어 분야 기술확보에 역점을 두고 있다.
VR 시장은 아직 성장세가 본격화하지 않았지만 삼성의 움직임에는 벌써부터 긴장감이 묻어난다. VR 시장은 구글·애플·마이크로소프트(MS)·소니 같은 내로라하는 글로벌 정보기술(IT) 강자들이 뛰어들어 벌써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삼성은 페이스북 자회사인 오큘러스VR와 협업해 기어VR를 선제 출시하며 기선을 잡았다. 하지만 양질의 콘텐츠가 없으면 생태계 장악이라는 청사진은 실패로 끝날 수 있다.
실제로 구글은 올해 개발자회의(I/O)에서 콘텐츠 생산 플랫폼인 점프를 공개하며 '점프-유튜브-VR기기'로 이어지는 VR 생태계 구축 전략을 제시했다. 애플·소니의 전략도 유사하다. 중국 기업들은 기어VR보다 값싼 VR기기들을 속속 내놓으며 가격으로 삼성을 압박하고 있다. 삼성으로서는 영화·게임 같은 다양한 콘텐츠를 앞세운 소프트파워가 그만큼 절실하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 삼성벤처투자는 지난 10월 뉴질랜드 VR 콘텐츠 기업인 '8i'에 투자하기도 했다. 헐리웃 영화배우 애슈턴 커쳐가 자금을 대는 벤처 투자펀드도 함께 했다. 또 게임업계에서는 블리자드 같은 미국 게임회사가 자사의 유명게임을 기어VR에서 즐길 수 있도록 삼성전자와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삼성이 VR 콘텐츠 확보 움직임을 강화하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이 같은 노력 덕분에 과거 3차원(3D) 애니메이션의 탄생과 맞먹는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삼성벤처투자와 함께 바오밥에 투자한 HTC 측은 성명을 통해 "바오밥은 애니메이션의 3D 시대를 연 픽사처럼 VR 콘텐츠를 주류 미디어의 지위로 끌어올릴 수 있다"며 "VR 콘텐츠가 미디어 시장의 주류로 자리잡도록 적극 협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종혁기자 2juzso@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