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큰손'들이 호텔투자에 빠져들고 있다. 경기불안으로 주식과 채권 등 전통자산으로 수익률 올리기가 쉽지 않은데다가 초저금리 시대에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자 기관투자가들이 호텔에 눈길을 돌리고 있다. 오피스빌딩 기대수익률보다 높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고 잦은 출장에 직접 호텔을 이용해본 기관투자가들 입장에서 호텔 서비스를 자연스럽게 비교해볼 기회가 많다는 점도 다른 대체투자자산에 비해 투자 접근성이 유리하다는 분석이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국내 대표적인 호텔 투자자다. 올 들어서만 미래에셋은 미국 하와이의 '페어몬트오키드하와이'를 2억2,000만달러(약 2,500억원)에 인수했고 미국 샌프란시스코 '페어몬트노브힐호텔' 역시 4억5,000만달러(약 5,000억원)에 사들였다. 올해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이 눈독을 들여 투자했거나 협상을 진행 중인 호텔 딜은 1조원에 가깝다. 지난 2013년에 당시 3억4,000만달러를 투자한 호주 시드니 '포시즌스호텔'의 경우 현재 가치가 4,000억원에 달한다. 2년 동안 호텔 투숙객을 통해 거둔 수입 외에 자산가치 상승으로만 200억원을 챙긴 셈이다.
미래에셋의 호텔 사랑은 국내라고 예외가 아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부동산펀드를 조성해 서울 광화문의 포시즌스호텔에 5,200억원을 투자했고 올해 4월 경기도 판교 코트야드메리어트호텔에도 2,000억원을 투입했다. 지난해 11월 개장한 동탄 신라스테이호텔에도 1,000억원을 투자했다.
올해 8월 호텔롯데는 미국 뉴욕의 '더뉴욕팰리스호텔'을 8,900억원에 인수해 '롯데뉴욕팰리스호텔'로 재개장한 바 있다. 미래에셋 외에 국내 기업이 호텔을 인수한 첫 사례로 경쟁이 극심해진 오피스빌딩 투자를 벗어나 국내 기관투자가들이 호텔로 투자 대상을 다변화시키는 흐름을 반영한 것이라는 평가다.
국부펀드인 한국투자공사(KIC) 역시 지난해 12월 중동계 민간 투자회사인 킹덤홀딩스(KHC)와 기밀유지 협약서를 체결하고 프랑스 파리 포시즌스호텔의 지분 인수를 위한 심의 절차에 돌입한 바 있다. 지난달 국내 자본이 사들인 해외 호텔 가운데 최대 규모인 9억4,000만달러(약 1조1,000억원)에 홍콩 인터콘티넨털호텔을 인수하기도 했다. 컨소시엄으로 투자에 참여한 KIC는 9억4,000만달러 중 4억8,000억달러를 직접 투자했다.
이들 기관들의 호텔 투자는 중국인을 중심으로 아시아 지역의 신흥 중산층이 증가함에 따라 여행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한국과 일본의 경우 1인당 소득이 2,000달러에서 1만5,000달러로 증가하는 동안 해외 출국자가 각각 연평균 13.9%, 14.2% 증가했다. 중국 역시 2006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070달러에서 지난해 7,570달러로 늘면서 해외 출국자가 연평균 15.2% 증가했다.
운용사 대체투자팀의 한 관계자는 "오피스 투자는 매입 경쟁이 과열되고 투자수익률이 5% 내외로 하락하고 있다"며 "호텔을 포함해 리테일·물류시설 등에 대한 투자자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호텔 숙박이 많은 기관 관계자들이 투자 대상에 대한 접근성이 용이한 점도 투자를 적극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배경이라는 분석이다. 부동산 전문 운용사의 한 관계자는 "해외 오피스 투자의 경우 비용과 시간을 들여 실사를 해도 정확한 기대수익률을 산정하거나 리스크 요인을 찾기가 쉽지 않은 면이 있다"며 "호텔은 고객으로서 꾸준히 이용해본 경험을 바탕으로 주변 핵심 호텔들과 비교하기가 쉽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지금도 1년 중 3개월 이상은 해외 출장을 다니고 있다.
안홍렬 전 KIC 사장은 국부펀드 수장으로서 호텔 사랑이 지나친 경우로 꼽힌다. KHC와의 포시즌스호텔 기밀협약 당시와 홍콩 인터콘티넨털호텔 투자 결정 직전 안 사장은 각각 해당 호텔의 로열스위트룸에서 숙박을 했다. 감사원 감사 결과 2,000만원이 넘는 이들 호텔의 숙박비용을 편의 명목으로 거의 무료로 받은 비위사실이 드러나 시민단체로부터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에 고발당했다. /송종호기자 joist1894@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