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동아시아 협력체 진화와 한국의 전략

아세안 출범·EAS 10주년… 동아시아 협력 전환기 맞아

장관님(반명함)

올해는 동아시아 다자협력체제에 있어 기념비적인 해이다. 우선 아시아 최초의 소지역협력체인 아세안(ASEAN)이 올해 말 공동체로 출범한다. 이 지역 유일의 정상급 전략포럼인 동아시아정상회의(EAS)는 올해 10주년을 맞아 미래 비전을 모색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동아시아 지형에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오고 있으며 이에 따라 우리의 동아시아 지역외교도 보다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21~22일 말레이시아에서 개최된 한·아세안, 아세안+3(한중일), EAS는 지난주 주요20개국(G20) 및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연이은 다자 정상외교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했다. 파리 테러 사태에 대한 대응과 저성장 늪에 빠진 국제경제 활성화를 위한 협력방안들이 집중적으로 다뤄진 데 이어 쿠알라룸푸르에 모인 주요국 정상들의 핵심 어젠다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 동아시아 지역 안보 문제였다.

이런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주 말 아세안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안보 및 지역협력 외교를 펼쳤다. 오는 2020년 인구 7억명, 국내총생산(GDP) 3조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는 아세안 공동체 탄생을 염두에 두고 아세안의 중소기업 육성 지원과 이공계 인재 육성 등 한·아세안 전략적 동반자 관계의 미래 발전을 위한 다양한 선행투자 사업들을 제시했다. 특히 박 대통령이 제시한 아세안 대상 새마을운동 보급은 이 지역 정상들로부터 큰 환영을 받았다. 인구의 70%가 농촌에 거주하는 아세안에서는 개발격차 해소와 연계성 증진이 최대 당면과제이다.


한중일 정상이 함께 참석하는 아세안+3 정상회의에서 정상들은 지난 2010년 우리 주도로 구성된 동아시아비전그룹이 권고한 21개 행동계획을 채택했는데 이는 2020년까지 동아시아 공동체 실현을 위한 로드맵으로 평가 받고 있다. 동 행동계획은 아세안+3의 비전인 동아시아 공동체 건설을 위한 노력에 중요한 추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아세안 정상들은 우리 주도로 3년반 만에 개최된 한일중 3국 정상회의를 환영하면서 의장국인 우리의 리더십을 높이 평가했다.

또한 출범 10주년이라는 이정표를 맞아 열린 EAS에 참석한 미국·중국 등 18개국 정상들은 테러 및 폭력적 극단주의, 해양안보, 사이버안보, 보건안보 등 새로운 안보 위협에 대한 EAS 차원의 공조방안을 심도 있게 협의했다. 박 대통령은 의장국인 말레이시아 및 호주와 함께 테러와 폭력적 극단주의에 대한 EAS 차원의 대응을 위한 성명 채택을 주도하는 한편 에볼라 사태와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발병을 통해 그 필요성이 확인된 역내 보건안보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우리가 제안한 '역내 보건안보 증진에 관한 성명' 채택도 이끌어냈다.

한편 이번 EAS에서는 안보 이슈로서 남중국해 문제와 함께 북핵 문제도 논의됐다. EAS 참석 정상들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재개 여건 조성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북한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행동에 대한 반대 입장을 천명하고 북한의 안보리 결의 준수를 촉구했다.

남중국해 문제는 일부 의견 충돌도 있었으나 한편으로는 이러한 민감한 안보 현안에 대해 소통하는 전략적 안보포럼으로서의 EAS 가치가 확인됐다. 박 대통령은 남중국해에서 항행과 상공비행의 자유가 보장돼야 하고 분쟁은 양자·다자 차원의 관련 합의와 국제적으로 확립된 행동규범에 따라 평화적으로 해결돼야 함을 강조했다. 또한 모든 관련 당사국들이 남중국해 행동선언(DOC)의 문언과 정신, 그리고 비군사화 공약들을 준수함으로써 남중국해의 평화와 안정 증진에 기여하기를 희망했다.

동아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지역답게 도전과 기회가 혼재해 있으며 중요한 전환기를 맞고 있다. 그런 만큼 양자, 3자, 그리고 소지역 차원의 협력 메커니즘이 활발하고 중층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우리로서는 동아시아의 다층적 지역협력 역학구도 속에서 보다 능동적인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우리의 국익과 위상을 제고시켜나가고자 한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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