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이달 기준금리 인상이 확실시되면서 미국 정크본드(투자부적격 채권) 시장에서 펀드런(대규모 자금이탈) 사태가 발생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불안감에 휩싸인 투자가들이 위험자산을 내던지는 게 신흥국 회사채 투매의 전주곡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공포에 질린 미 정크본드 시장=14일(현지시간) 세계 최대 투기등급 회사채 상장지수펀드(ETF)인 '아이셰어 아이박스 달러 하이일드 회사채 EFT'는 1.5% 하락했다. 이 ETF 가격은 앞서 지난 11일에도 2% 급락하며 2011년 이후 일간 기준으로는 최대 하락폭을 기록했다. 올 들어 미 정크본드에 투자하는 펀드에서 순유출된 자금은 9일 현재 105억달러에 이른다.
더구나 정크본드의 매수-매도 호가 차이가 10%까지 벌어진 점을 감안하면 추가 하락에 무게중심이 실리고 있다. 원자재 가격이 급락한 가운데 시중금리까지 오르면 에너지 기업 등 고금리 회사채의 부도 위험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최근 행동주의 투자가인 칼 아이칸, 신(新)채권왕으로 불리는 제프리 건들락 등 금융계 거물들도 "정크본드 시장 붕괴는 시작에 불과하고 더 큰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며 경고하고 있다.
정크본드 가격 급락은 대규모 환매사태로 번지고 있다. 펀드 분석기관인 모닝스타에 따르면 11일 하루 동안 서드애버뉴캐피털에서는 9,740만달러가 빠져나갔다. 운용 자산 규모는 8억8,432만달러로 지난해 말 20억달러에서 반토막이 났다. 와델앤리드파이낸셜에서도 올 들어 18억달러가 유출됐다.
아이비 자산전략펀드에서는 지난달에만 12억달러가 유출되면서 자산 운용 규모가 175억달러로 1년 사이 3분의1이 줄었다. 이 때문에 일부 정크펀드 운용 기관들은 자금 이탈을 못 견디고 잇따라 환매 중단과 펀드 청산에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고위험 채권 투매 사태 신흥국으로 번지나=미 정크본드 가격 추락의 파장은 유럽으로도 번지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유럽 정크본드 수익률은 지난주 47bp(1bp=0.01%포인트) 상승하며 5.16%를 기록했다. 투자가들은 연준이 금리를 인상하면 시중 유동성이 줄면서 고위험 회사채의 부도 확률이 높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는 것이다. 정보제공업체인 마르키트에 따르면 5년 만기 유럽 고금리 회사채 신용디폴트스와프(CDS)프리미엄은 이번달에만 80bp 이상 급등하면서 2개월래 최고치에 달했다.
특히 미 정크본드 시장의 혼란이 가중되면 신흥국이 직격탄을 받을 것으로 우려된다. 미 고금리 회사채에 투자하는 펀드의 상당수가 같은 고위험ㆍ고수익 투자 상품인 신흥시장 채권 펀드에 최대 20%까지 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 고수익 회사채의 투매로 글로벌 채권시장에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며 "이 가운데 신흥국 회사채가 가장 취약하다"고 경고했다. 이미 신흥국 채권시장에서는 외국인 자금이 속속 탈출하고 있다. 모닝스타에 따르면 상위 15개 신흥시장 채권펀드에 2009~2014년 657억달러의 자금이 순유입됐지만 올 들어서는 지난달까지 49억달러가 순유출됐다.
하지만 연준의 금리인상이 이미 예고된 만큼 충격이 제한적이라는 지적도 많다. 마크 스토커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날 코리아소사이어티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신흥시장 성장세가 둔화된 가운데 연준의 금리인상으로 시장 유동성이 감소할 수 있다"면서도 "신흥시장에서 서든 스톱(sudden stopㆍ자본유입의 갑작스러운 중단)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말했다. /뉴욕=최형욱특파원 choihuk@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