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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20.8㎞ '녹색지옥' 6주내 480회 주행해야
비로소 시장에 나올수 있어
고속 주행에도 승차감 우수… 실내 정숙성도 훨씬 개선
럭셔리 車 면모 보여줘
"'녹색 지옥(The Green Hell)'을 통과하지 못한 차는 명차 반열에 올라설 수 없다."전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고급차 브랜드'로 통하는 명차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 있다. 독일 중서부 라인란트팔츠주에 위치한 자동차 주행시험장 '뉘르부르크링 서킷'이다.지난 13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에서 자동차로 2시간을 내달려 뉘르부르크링 서킷에 도착했다. 세계에서 가장 험난한 자동차 서킷이라는 악명을 실감시켜 주려는 듯 거센 바람과 함께 빗줄기가 몰아쳤다.이 서킷은 녹색 지옥이라는 별칭 외에도 '지옥의 링'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길이만 20.8㎞인 도로의 최고와 최저 고도 차이가 297m에 달해 산 하나 높이를 좌우로 왔다갔다하면서 차량성능을 점검하기 때문이다.
전체 도로의 커브는 200개가 넘는데 이중 급커브만 73곳에 달한다. 명차 반열에 오른 차량은 뉘르부르크링을 4주에서 6주 안에 480회(1만㎞)를 달려야만 비로소 시장에 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고속으로 1만㎞ 주행한 차량은 일반도로에서 무려 9년치(18만㎞)를 고속 주행한 것과 맞먹는다.
특히 뉘르부르크링에서의 주행시험은 그 자체만으로 마케팅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곳에서 주행시험을 하려면 연간 12만유로를 내고 멤버십(IP)을 확보해야 한다. IP를 확보한 곳은 자동차 메이커와 타이어 업체 등 44개 뿐이다. 현대차는 지난 2011년 뉘르부르크링에서의 상시 시험을 위한 자체 시험센터 설립을 결정하고, 총 660만 유로를 투자해 2013년 9월 '유럽차량시험센터'를 완공했다. 이곳에 자체 시험센터를 마련한 업체는 현대차를 비롯해 BMW·아우디·브리지스톤 등 10여개에 불과하다.
특히 고급차 브랜드들은 뉘르부르크링 서킷에서 신차를 시험하는 것에 큰 자부심을 갖는다. 차량 품질은 물론 마케팅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상징적 의미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서킷 인근에는 신차의 스파이샷을 노리는 파파라치가 늘 우글거린다.
현대 유럽기술연구소(HMCETC) 차량시험센터는 서킷 출발점이 가장 잘 내려다 보이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빗줄기가 흩날리는 이날도 뉘르부르크링 서킷에서는 현대차의 독자적인 고급차 브랜드 '제네시스'의 초대형 세단 'EQ900'의 막바지 시험과 튜닝 작업이 한창이었다.
직접 차를 타고 체험하는 뉘르부르크링은 얘기로 듣고 밖에서 바라보는 것보다 더 혹독했다. 조수석에 탑승한 EQ900는 양산 직전의 테스트 4륜구동 차량. 직접 운전을 해 보지 못해 아쉬웠지만 하체의 강성은 여느 프리미엄차에 못지 않은 느낌이었다. 안전벨트를 착용하자 전문 드라이버가 가속 페달을 힘껏 밟았다. 직선주로에서 최고시속 220km, 코너에서는 160km의 속도로 질주했다. 비가 내린 서킷 환경을 감안하면 가히 폭발적인 가속력과 안정된 주행성능을 보였다.
계속되는 급커브에 온 몸은 좌우로 급격하게 쏠리고, 직선도로에서는 온 몸이 시트에 파묻힐 듯이 내달렸다. 무게중심이 잘 잡혀 코너를 돌 때의 지지력이 예사롭지 않았고 비가 부슬부슬 내려 젖은 도로였지만 제동력도 수준급이었다.
20.8Km의 거리를 주행하는데 걸린 시간은 대략 10분 내외로 엄청난 속도감에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한 바퀴만 돌았는데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 같았다. 주행 내내 긴장한 탓에 하차하는 순간은 마치 마라톤을 뛰고 난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고속주행 때의 승차감과 실내 정숙성 등 감성적인 부분은 기존 에쿠스와 1세대 제네시스 보다 월등히 개선된 것과 같아 만족스러웠다.
스테판 호퍼러 HMCETC 차량시험센터 내구시험팀장은 "EQ900가 뉘르부르크링의 혹독한 환경 속에서 거칠게 다뤄지고 있는 이유는 극한환경에서도 편안하게 운전할 수 있도록 주행성능과 내구성을 검증하기 위한 것"이라며 "뉘르부르크링의 수많은 난코스를 반복 테스트했다는 것만으로도 EQ900가 최고의 명차로 올라서기 위한 첫 단추를 잘 끼웠다고 보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뉘르부르크링(독일)=
이현호기자 hhlee@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