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홍우의 오늘의 경제소사]소통과 타협으로 급성장 이끈 ‘철도 표준시’


세상에서 가장 믿지 못할 것. 뭘까. 19세기 중후반 무렵 답은 ‘열차 시각표’였다. 증기기관차로 운행되는 최초의 철도 노선인 리버풀~맨체스터 구간 개통(1830년) 직후 신속한 이동과 수송에 대한 찬사 뒤에는 불만과 두려움도 적지 않았다. 기껏해야 시속 24~40㎞로 달린 열차에서 내린 승객들은 ‘전광석화처럼 지나가는 풍경에 현기증이 난다’고 호소했다.

독일의 유대계 서정 시인이자 기자였던 하인리히 하이네는 1843년 프랑스에서 철도를 처음 경험하고는 ‘철도를 통해 공간은 살해 당했다. 우리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시간 밖에 없다’는 말을 남겼다. 시간은 과연 온전했을까. 철도 역사의 초기에 시간은 불평의 대상이자 분란의 씨앗이었다. 하이네의 말마따나 속도를 통한 공간의 압축이 지역간 시간의 차이를 혼란스럽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철도 등장 이전에도 시계가 존재했으나 분명한 것은 어디서든 해가 뜨면 아침이고 지면 저녁이라는 사실. 철도가 선사한 빠른 이동은 이 같은 시간개념을 무너뜨려 지역간 시차가 시대의 골칫거리로 떠올랐다. 국토가 넓은 미국이 특히 그랬다. 남북전쟁 직전 미국의 철도 총연장은 3만626㎞(오늘날 기준으로 세계 9위인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철도 총연장과 비슷하다. 한국은 5,478㎞로 세계 33위, 북한은 5,242㎞로 세계 34위다)로 세계 최장. 전후에는 더욱 속도가 붙어 1880년에는 9만 3,301㎞로 늘어났지만 새로운 혼란이 나타났다.


카우보이나 세일즈맨들은 서쪽으로 18㎞ 이동할 때마다 시간을 1분씩 늦춰 계산해 각 지방시에 맞췄으나 빠르게 퍼지는 철도망은 시간 기준을 혼동에 빠트렸다. 300여개에 이르는 지방시를 100개로 줄여 봐도 철도 시각표를 짜고 읽는 게 난수표 작성과 해독처럼 어려웠다. 복잡한 철도 시각표에 해상 여객·화물선의 운항 시각표까지 맞춰야 했던 항구 도시에서는 더 큰 혼란이 일었다.

지역과 도시, 철도 회사간 이해관계가 정리되고 시간의 혼란이 진정된 것은 1883년 11월 18일. 미국과 캐나다 철도업자들이 시카고에 모여 네 가지 기준(서부ㆍ중앙ㆍ산악ㆍ태평양)에 따라 각각 1시간씩 차이가 나는 철도 표준시를 도입하면서부터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시간을 철도업자들에게 맡길 수 없다’는 저항도 잠시. 신뢰성을 확보한 철도는 1900년 총연장 30만9,350만㎞(오늘날에는 중복 노선 정리로 22만 4,792㎞로 축소 조정)로 뻗어 나가며 미국경제의 발전을 이끌었다. 지금도 사용되는 세계 표준시가 1884년 도입된 것도 철도 표준시의 성공에 자극을 받아서다.

철도 표준시는 관행과 이해관계에 얽힌 혼란을 합의와 이행으로 극복한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힌다. 세상은 약속과 신의에 따라 시간과 공간의 흐름에 대응해 나가건만 예외인 곳도 있다. 이 땅의 현실이 그렇다. 시간의 흐름을 아이들에게 가르칠 국정교과서 강행으로 혼란이 가중되고, 우리네 공간 북쪽은 일제 잔재를 청산한답시고 지난 8월부터 표준시를 30분 늦춰 없었던 남북간 시차가 새로 생겨났으니./권홍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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