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플레이어 출신 감독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스포츠계 속설이 있다. 축구계에도 화려했던 선수 시절에 비해 감독으로는 빛을 못 본 인물들이 여럿이다. '축구의 신'으로 불린 디에고 마라도나(56·아르헨티나)는 아르헨티나 대표팀 감독으로 2010 남아공 월드컵을 맞았으나 팀은 8강에서 독일에 0대4로 완패했다. 1980~1990년대를 주름잡았던 네덜란드의 전설적 스트라이커 마르코 판 바스턴(52)은 2006 독일 월드컵에서 네덜란드의 16강 탈락을 막지 못했다. 카를로스 둥가(53) 감독의 브라질은 2018 러시아 월드컵 예선에서 에콰도르·우루과이에 이은 3위에 그치고 있다. 위르겐 클린스만(52·독일) 감독은 쇠락하던 독일 대표팀을 2006 월드컵 3위에 올려놓았고 이후 '축구변방' 미국을 한 단계 끌어올렸으나 최근 부진과 독단적인 대표팀 운영으로 경질 위기에 놓였다. 물론 프란츠 베켄바워(71·독일), 요한 크루이프(69·네덜란드) 같은 '예외'도 꽤 있다. 베켄바워는 선수로서 발롱도르(올해의 선수)를 두 차례 수상한 데 이어 감독으로도 서독의 월드컵 우승과 바이에른 뮌헨의 리그·유럽 대항전 제패를 이끌었다.
'아트사커의 창시자'인 스타 중의 스타 지네딘 지단(44·프랑스)은 어떨까. '베켄바워 모델'을 따라 감독으로도 위대한 지단 시대를 열 수 있을까. 스페인프로축구 레알 마드리드는 지단을 새 감독으로 선임한다고 5일(한국시간) 발표했다. 플로렌티노 페레스 레알 회장은 홈구장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라파엘 베니테스 감독과의 계약해지라는 힘든 결정을 내렸다. 이사회는 지단을 새 감독으로 임명한다"고 밝혔다. 페레스 회장은 "역대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인 지단은 레알 감독의 역할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10번째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코치로서 함께해 선수들 대부분과도 잘 아는 사이"라고 설명했다.
레알은 2010년부터 지단을 특별고문·기술이사·코치 등에 차례로 앉히며 감독 수업을 받게 했다. 2014년 6월부터는 2군 감독을 맡겼다. 2006년 은퇴 전 지단은 레알에서 5시즌(155경기 37골)을 뛰는 동안 리그와 유럽 챔피언스리그 등 6개의 우승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프랑스의 유럽선수권대회와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으며 1998년 발롱도르에 뽑혔다. 2004년에는 베켄바워와 경합 끝에 UEFA 50년 역사상 최고 선수로 선정됐다.
베켄바워는 바이에른 뮌헨 사령탑에 앉은 첫해인 1993-1994시즌에 독일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뤄냈다. 현재 레알은 2위 바르셀로나에 승점 2점, 선두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4점 뒤진 프리메라리가 3위다. 시즌 종료까지는 20경기. 페레스 레알 회장은 "이사회는 지단 감독에게 절대 지지를 보낸다. 그에게 불가능은 없을 것"이라는 말로 역전 우승 주문을 대신했다. 지단은 "레알은 최고의 팬들이 응원하는 세계 최고의 클럽이다. 열과 성을 다해 레알을 일으키겠다"고 밝혔다.
지단은 그러나 1군 감독으로서의 출발을 시즌 중에 맞게 된 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2군 감독 시절 성적도 26승17무14패로 썩 좋지 못했다. 검증되지 않은 '감독 지단'에 불안한 전망이 공존하는 이유다. 레알은 라이벌 바르셀로나의 페프 과르디올라 전 감독을 떠올리는지 모른다. 바르셀로나는 단 한 시즌 2군 감독을 지낸 과르디올라에게 바로 1군 감독을 맡겨 대성공을 거뒀다. 2011-2012시즌까지 네 시즌 동안 리그 3연패와 챔스리그 2회 우승을 챙겼다.
지단의 1군 감독 데뷔전은 10일 데포르티보와의 홈경기다. 12년째 레알을 운영하며 11차례나 감독을 갈아치운 페레스 회장은 지단과의 계약기간을 밝히지 않았다. /양준호기자 miguel@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