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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도쿄·홍콩·타이베이 등 청년 실업 이어 주거난도 심각
양극화 넘어 '빈곤화' 치달아
집 아닌 여러개로 나뉜 방에서 아등바등 사는 '청년 난민' 조명
박민규의 단편 '갑을 고시원 체류기' 속 주인공은 대학교 2학년생으로 친구 집에 기숙하다 어느 날 친구 집을 떠난다. '이사'도 아닌 '이동'에 가까운 간단한 짐을 들고 거처로 선택한 곳은 월 9만 원에 식사제공이 되는 갑을 고시원. 그는 그곳이 단 한 푼의 보증금도 없는 자에게 어두운 세상을 밝혀주는 한 줄기 빛과 같다고 여겼으나 막상 들어가보니 생각이 바뀐다. '방'이라기 보다는 '관'이라고 불러야 할 공간이라고. 도저히 다리를 뻗을 수 없는 공간에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고, 그 곳에서 공부를 하고 자기 위해서는 의자를 빼서 책상에 올려야 하는 사이즈의 방이었던 것. 벽이 아닌 칸막이에 가까운 것이 방과 방을 나눈 곳에서 그는 발뒤꿈치를 들고 걷는 것이 생활화됐고, 코도 푸는 게 아니라 치약을 짜듯 눌러서 조용히 짜는 습관이 생기는 등 소리 없는 사람이 돼야만 했다. 1991년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을 늘어놓는 이유는책 '청년, 난민 되다' 속 청년 주거 현실이 25년 전이나 지금이나 놀랍도록 일치하면서도 박민규 특유의 '웃픈' 문체가 주거 빈곤층 청년들의 자조적인 심정을 고스란히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대학생 4명으로 구성된 독립언론 '미스핏츠'가 1년 간 타이베이·홍콩·도쿄·서울의 청년들을 만나 주거 현실을 탐사취재한 르포르타주이자, 청년들의 암울한 미래에 대한 전망이며, 미래를 밝히기 위해서는 청년 스스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조언서다.
미스핏츠가 확인한 4개국의 청년 주거 상황은 양극화를 넘어 빈곤화로 치닫고 있었으며 빈곤의 모습은 서로 닮아있었다. 또 집 한 채인 공간을 여러 개의 방으로 쪼갠 타오팡(타이완), 큐비클(홍콩), 탈법 쉐어하우스(일본), 하숙형 원룸·고시원(한국)에 살면서 청년들은 언젠가는 방이 아닌 집에서 살 수 있게 될 것이라는 희망조차 가질 수 없게 된 것 역시 일치했다.
그러나 현실을 타개하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었다. 타이베이에서는 최악의 주거비와 주거 불평등이 구조화됐으며 사회적 문제가 됐다. 타이베이 시민 2만 명은 2014년 10월 한 채에 수백억을 호가하는 디바오 지구 렌나이 아파트 앞에 드러누워 주택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서 항의했다. 바로 '새둥지운동'이다. 당시 모인 시민들은 주거의 권리, 부동산 세제 개편, 공공주택 확충 등 다섯 가지를 요구했다. 그리고 11월 치러진 선거에서 이들의 요구안을 이행하겠다고 약속한 후보들이 대거 당선됐다. 2014년 홍콩의 우산혁명도 민주화라는 커다란 구호 아래 청년 실업, 청년 주거 문제가 있었다. 일본에서는 청년 문제를 자생적으로 해결하려는 대안 쉐어하우스의 형태인 긱하우스와 지원 단체들이 생겨나고 있다.
"'금수저 흑수저' 계급이 있는 '헬조선'에서는 '이생망(이번 생애는 망했다)'"이라는 자조가 청년들 사이에서 공감을 얻고 있는 요즘이지만 이 책을 통해 단지 각국 청년의 불행을 재확인하는 것만으로는 무의미하다. 책은 열악한 삶의 환경과 조건을 바꿀 수 있는 것은 그래도 여전히 정치와 정책이라고 말한다. 물론 이에 대한 청년들의 의지가 필수다. 누가 대신 나서주지 않는다. 1만5,000원.
/연승기자 yeonvic@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