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회복세에 對스페인·伊 수출↑… 한류 활용 남유럽 공략 가속을

<4> 유럽 공략의 교두보 이탈리아·스페인
기아차 판매 20% 늘고 삼성·LG TV 등 인기몰이
글로벌 제품 각축장 두 시장 선점땐 EU공략 탄력
한·EU FTA 효과 극대화 통해 수출 진작 나서야



이탈리아 밀라노의 중심지 '해방기념일의 길(Viale della Liberazione)'에 우뚝 서 있는 삼성전자 사옥 앞.

허름한 차림의 한 이탈리아인이 도로 한복판에서 "음식을 사야 하니 돈을 주세요"라는 뜻의 표지판을 들고 서 있었다. 지난해 말 찾은 이탈리아의 경제수도 밀라노는 재정위기로 지난 2012년 이후 내리 3년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던 여파가 여전한 듯했다.


하지만 차로 조금 더 달려 도착한 상업 중심지 '부에노스아이레스거리(Corso Buenos Aires)'는 분위기가 꽤 달랐다. 경제가 내리막을 타면서 자취를 감췄던 '루미나리에(전등 조형물)'가 거리에 다시 등장했다. 주세페 비티 기아자동차 이탈리아판매법인 매니징디렉터 겸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위기의 그림자가 아직 남아 있지만 2014년 마테오 렌치 총리 당선 이후 이어진 구조개혁 등에 힘입어 경제가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며 "기아차의 경우 2015년 자동차 판매량이 상위 10개 브랜드 가운데 최고인 전년 대비 20% 증가했다"고 말했다. 현지 가전제품 판매매장인 유로닉스의 카파치오네 안토니오 매니저는 "TV와 휴대폰은 '메이드 인 코리아'가 단연 인기를 끌고 있다"며 "삼성과 LG TV를 써본 고객은 반드시 재구입할 만큼 충성고객도 많은 편"이라고 전했다.

유럽의 '골칫덩이'였던 남유럽의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재정위기로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감마저 일며 침체의 기간을 보냈지만 최근에는 원기를 회복하며 경기회복세가 공고해지는 양상이다. 실제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3위 경제 대국인 이탈리아는 지난해 성장률을 4년 만에 플러스(0.9%)로 돌려세웠다. 민간소비 증가율도 2012년 -4%에서 2015년 0.6%(추정치)로 개선됐다. 올해는 1.2%까지 올라갈 것이라는 진단이 나오는 상황이다. 스페인도 올해 2.7%(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전망) 성장이 기대된다. 이는 유로존 평균(1.3%)의 두 배를 넘는 것이다. 예상대로 이들 경제가 살아나면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효과 극대화를 통한 수출 진작도 가능해진다.

경기회복의 긍정적 신호는 지난해 우리의 남유럽 수출실적에서도 확인된다. 우리의 이탈리아와 스페인에 대한 수출은 지난해 전년 대비 각각 2.7%(11월 기준), 7.2% 증가했다. 8% 감소한 대유럽 수출 부진을 남유럽 시장에서 만회했다는 얘기다. 우리 입장에서는 전체 유럽 수출에서 8.5%를 차지하는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유럽 공략의 거점으로 활용할 여지가 있다.

특히 독일·프랑스·영국 등 유럽 내 다른 경제 대국과 달리 양국은 자국 브랜드가 내수시장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는 시장이 아니다. EU에서 4~5번째(이탈리아 6,200만명, 스페인 4,800만명) 내수시장을 자랑하면서도 유럽에서 글로벌 브랜드 간 각축이 가장 활발한 곳이다. 그만큼 두 시장을 선점하면 디자인· 실용성·가격 등 모든 면에서 깐깐한 EU 시장 공략이 한결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명품의 나라로 통하는 이탈리아에서 살아남은 브랜드라면 품질만큼은 인정받았다는 의미도 된다.

지난해 이탈리아에서는 자동차 판매량 증가에 힘입어 열연강판(지난해 수출 증가율 125.1%) 등 철강 제품이, 스페인에서는 자동차 부품(284.4%), 석유화학 합성원료(728.4%), 카 스테레오(1,900.1%) 등의 수출이 호조를 보였다. 여기에 BB크림 등 한국산 화장품이 마니아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현지에서는 올해도 이런 품목이 잘나갈 것으로 보고 있다. 비티 COO는 "보통의 자동차 브랜드는 마진이 가장 큰 개인구매 비중이 60% 정도인데 기아차는 90%에 달한다"며 "빼어난 디자인과 파격적인 품질보증으로 개인구매가 많아진 만큼 브랜드 성장 잠재력도 크다"고 말했다.

/기획취재팀=이상훈 차장(팀장) 최형욱 뉴욕특파원(멕시코시티) 김현수 베이징특파원 구경우(호찌민)·이태규(뉴델리)·김상훈(밀라노)기자 shlee@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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