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베이징의 한 은행 직원인 첸퀸예(30)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미국에 상장된 중국 기업 주식을 사들였다. 그는 "은행 계좌가 필요하지 않고 3분 만에 거래가 끝난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이처럼 중국 '왕서방'들이 미국 부동산은 물론 주식·채권 등 금융자산 투자에도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자국 내에는 투자처가 마땅찮자 미국으로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중국 증시와 위안화 가치는 연일 추락하고 일부 지방채의 디폴트(채무불이행) 경고가 잇따르는 등 채권 투자마저 불안한 상황이다. 중국 부동산시장도 거품 논란이 커지면서 언제 급락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크다.
◇중국 중산층, 미 주식·채권 투자 열기=중국 은행은 최소 100만달러의 순자산을 가진 고객에게만 해외 거래계좌를 개설해주고 있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해외 금융자산 매입은 일부 '큰손'들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통한 금융거래 혁신이 언어장벽이나 정부 규제 없이 미 금융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현재 중국 정부는 개인들에 대해 연간 5만달러만 해외송금을 허용하고 있다. 애플리케이션 업체들도 해외투자 기회가 제한된 중산층과 온라인 투자에 익숙한 젊은층을 집중 공략하고 있다. 반응은 폭발적이다. 애플리케이션 업체인 지무스탁의 배리 프리먼 설립자는 "지난해 7월 서비스를 시작한 지 사흘 만에 중국인 5만명이 해외 주식 계좌를 개설했고 지금은 50만명으로 늘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이후 반복된 주가 폭락 사태에 해외투자 열기는 더 달아오르고 있다. 중국 인민은행에 따르면 외국인의 중국 투자는 줄고 중국인의 해외투자는 늘면서 중국의 주식·채권 투자자금은 지난해 상반기에만 572억달러가 순유출됐다. 전년의 25억달러 순유입과 대비된다.
지난해 12월 중국 외환보유액이 3년 만에 최저치로 줄어든 것도 자본유출의 후유증으로 분석된다. 또 다른 애플리케이션 기업인 짐보박스의 동준 최고경영자(CEO)도 "중국인 투자가들이 국내 증시 변동성 증폭과 위안화 가치 급락에 대응해 대안투자처를 적극적으로 찾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금융시장 요동을 막기 위해 중국 정부가 자본통제를 단행할 가능성도 남아 있다. 하지만 중국이 자본자유화의 길에 들어선 만큼 해외 금융투자 열기는 대세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은 중국인의 투자 가능한 개인자금이 오는 2020년 말 196조위안으로 현재 110조위안의 두 배 가까이 늘 것으로 보고 있다.
◇미 부동산에도 자금 유입 지속=런던·도쿄·시드니·시애틀 등 해외 부동산시장에도 중국 자본의 유입이 지속되고 있다. 이들 지역도 거품 논란에 시달리고 있지만 최소한 중국보다는 리스크가 적다는 것이다. 시진핑 정부의 부정부패 척결 운동과 사정 바람, 베이징 스모그 등 환경오염도 중국인들의 해외 부동산 매입을 촉발하는 요소다.
특히 미국 부동산 인기가 치솟고 있다. 위안화 가치 하락과 달러화 가치 상승이 맞물려 환차익을 얻을 수 있고 미 경기회복에 편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인 나이트프랭크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인의 미국 부동산투자 규모는 283억달러로 전년(151억달러)보다 87%나 급증했다. 또 외국인부동산투자가협회(AFIRE)의 조사에 따르면 회원사들의 올해 선호 도시로 각각 1·3위인 뉴욕과 샌프란시스코를 포함해 휴스턴·로스앤젤레스·워싱턴DC·시애틀 등 미국 도시들이 상위권에 대거 포진했다.
AFIRE의 짐 페트캐터 CEO는 "중국 경기둔화, 브라질 침체, 유럽의 이민 위기 등으로 투자가들이 미국을 가장 안전한 도시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중순 미 정부가 해외투자가들이 미 부동산을 매입할 때 내는 세금을 하향 조정한 것도 중국 부자들의 미국행을 부채질하는 요소다. 투자 열기가 가장 뜨거운 곳은 맨해튼이다. 지난해 외국인의 미국 부동산투자액 873억달러 가운데 맨해튼이 235억달러로 전체의 27%를 차지했다.
/뉴욕=최형욱특파원 choihuk@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