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리] 한류에도 '아방가르드' 혁신 필요-송성각 한국콘텐츠진흥원장


문화 콘텐츠 분야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복고 열풍이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공동체 정신이 살아 있으며 미래에 대한 낙관과 희망이 존재했던 '그때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은 오늘의 삶이 그만큼 힘들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인들에게는 지난 1890년대부터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 '벨 에포크(Belle Epoque·아름다운 시기)'가 돌아가고 싶은 시절일 것이다. 산업혁명의 성과가 가시화되던 당시는 평화의 지속과 미래에 대한 희망이 넘쳐나던 시기였다. 예술 분야에서도 인상주의가 꽃을 피웠으며 예술가들에 대한 우호적인 분위기가 온 도시를 감싸고 있던 말 그대로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그러나 벨 에포크는 오래가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것. 전쟁은 물질적 기반뿐 아니라 합리적 이성을 숭배하던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황폐하게 만들고 말았다. 전쟁은 예술의 흐름도 바꿔놓았는데 다행히 퇴조가 아니라 위기를 발판으로 혁신을 이뤄냈다. 이때 등장한 아방가르드 혹은 전위주의 운동은 기성의 예술 관념이나 형식을 철저히 부정했다. 그리고 새로움에 대한 갈구를 통해 다다이즘과 입체파·미래파·초현실주의 등 새로운 사조를 탄생시켰다. 이러한 아방가르드 혁신으로 유럽은 전쟁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예술의 중심지로 위상을 공고히 하는 기회를 얻게 된다.

2003년 드라마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으며 시작된 한류는 최근 '별에서 온 그대' 등 드라마의 인기를 넘어 K팝, 예능 포맷 등으로 영역을 확장해가며 한동안 벨 에포크를 구가했다. 하지만 유럽의 벨 에포크가 지속되지 못했듯 한류 열풍에도 빨간불이 켜졌다는 경고가 몇 년째 이어지고 있다. 이른바 '혐한류'로 일본 내 한류는 거센 역풍을 맞았고 자국 콘텐츠의 보호와 육성에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는 중국은 우리를 위협하는 존재가 돼가고 있다. 한류 콘텐츠의 다양성 부족과 획일화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이제 우리 한류 콘텐츠에도 아방가르드 운동이 필요한 시점이다.

아방가르드는 원래 군사용어였다. 전쟁에서 주력 부대에 앞서 적의 움직임과 위치를 파악하는 척후병을 뜻하는 용어가 예술로 전용된 것이다. 필자는 이제 아방가르드를 다시 한 번 문화 콘텐츠 용어로 전용하고 이 운동을 전방위적으로 실천할 것을 제안하려고 한다. 대한민국 콘텐츠 산업이 나아갈 방향을 정교하게 예측하고 지금까지 해온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꾸기 위한 혁신적 운동이 콘텐츠 분야에서도 전개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창조적 파괴를 통한 새로운 콘텐츠 생산, 이종 산업과의 적극적 연계, 선택과 집중에 기반한 해외 시장 공략 등 다방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는 '멀티 아방가르드' 방식이 돼야 한다. 이러한 혁신적인 변화가 뿌리를 내려 2016년이 한류의 벨 에포크를 다시 여는 원년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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