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마켓 인사이드] "엘니뇨 보다 심술궂은 소녀 온다"… 라니냐 복병에 떠는 원자재시장

가뭄·폭우로 남미·美 농산물 수확량 급감 가능성
인도 철광석·호주 석탄 채굴 등도 큰 차질 빚어져
기상이변 따른 득실 예측해 최적 투자방식 찾아야


이상기후가 새해 세계 농산물 등 원자재 시장의 최대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기승을 부리면서 세계 곳곳에 고온과 가뭄, 홍수를 불러와 농산물 생산에 치명적인 타격을 준 엘니뇨에 이어 이번에는 라니냐가 맹위를 떨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스페인어로 엘니뇨(El Nino)는 남자아이, 라니냐(La Nina)는 여자아이란 뜻으로 적도 부근 무역풍에 따라 해수면 온도가 각각 상승하고, 하락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에 따라 원자재 시장 투자자들은 '두 아이들'의 말썽을 예측해 최적의 투자 방식을 찾아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5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제까지 심각한 엘니뇨 현상이 발생한 후 나타난 라니냐는 더 강력한 이상기후를 불러왔다"며 "농산물 시장에선 엘니뇨보다 라니냐가 훨씬 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한다"고 경고했다.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는 엘니뇨는 '슈퍼엘니뇨'라고 불릴 정도로 강력한 양상을 보여왔다. 따라서 이번에 찾아올 라니냐의 영향력 역시 엘니뇨 못지 않을 것으로 우려된다는 것이다.

엘니뇨가 나타났다고 해서 무조건 라니냐가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올해에는 라니냐가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 기상예측기관들의 예상이다. 지난달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은 보고서에서 올해 엘니뇨가 막을 내린 후 라니냐가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79%로 매우 높다고 밝혔다. NOAA는 이 보고서에서 "라니냐가 발생할 가능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3~4월을 전후해 나타나는 라니냐가 시작되면 그 여파는 어느 한 지역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중에서도 전문가들이 특히 우려하는 곳은 인도다. 라니냐가 시작되면 인도에서는 우기를 의미하는 '몬순'이 길어지고 태풍이 자주 발생해 농작물 수확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 인도 경제는 수요가 많은 양파 가격에 특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블룸버그는 과거 라니냐가 발생했을 때 일시적으로 양파 가격이 5배 가까이 폭등한 적이 있었다며 라니냐를 앞두고 양파 사재기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전했다. 쏟아지는 비에 인도의 철광석 생산이 추락할 가능성도 높다. 크레딧스위스의 멜린다 무어 원자재 애널리스트는 "과거 라니냐로 비가 많이 내려 인도의 철광석 수출량이 절반 정도로 감소한 적이 있다"며 "인도 증시와 철강에 투자하는 투자자들은 이를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자재 주요 수출국 호주도 라니냐 여파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제까지 라니냐 현상이 발생했을 때 호주에서는 폭우가 이어져 석탄 채굴과 밀, 설탕 생산이 큰 차질을 빚어왔다. 호주 메릭캐피털에서 3억 5,000만달러(4,087억원) 규모의 원자재펀드를 운용하고 있는 에이드리언 레드릭 수석 투자자는 "농산물 등 원자재 투자자들은 발생 가능성이 높은 라니냐가 호주 시장에 미칠 영향력을 지금부터 잘 파악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라니냐가 발생하면 남미 대륙과 미국 남부 곡창지대에서도 가뭄이 들고 농작물 수확이 크게 줄어든다. 이 경우 옥수수, 밀, 콩 등과 같은 작물 가격이 껑충 뛰어오를 가능성이 있다. 지난 2010년 라니냐가 발생했을 때 미 시카고상품시장에서 설탕 가격은 67%, 콩은 39% 급등했으며 전반적인 농산물 가격도 평균 21%나 올랐다. FT는 이와 관련해 올해에도 원자재 투자자들이 관련 상품 가격 급등에 미리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라니냐 현상으로 농산물 생산에 득이 되는 지역도 있다. FT에 따르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라니냐로 강수량이 늘어나 지역의 옥수수와 사탕수수 농사가 풍년을 이루게 된다. 북미지역에서 가을밀을 생산하는 농산물 업자들도 라니냐로 충분한 비가 내리면 풍작을 기대할 수 있다.

특정 원자재 상품의 등락도 문제지만 라니냐가 심각해지면 투자자들의 우려가 확산돼 글로벌 금융시장 전반의 불확실성을 키울 수 있다. 블룸버그는 엘니뇨가 지난해 세계 전역에 이상기후로 고온을 불러왔을 때 난방 수요 하락을 점친 원유 투자자들이 석유상품을 투매해 저유가 현상이 심각해지는 등 글로벌 금융시장 전반에 혼란이 가중됐다며 라니냐 때도 유사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경운기자 cloud@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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