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작 틈새에… 흐드러진 '들꽃 같은 공연'

스타 배우·대규모 제작비 대신 신선한 젊은 감각·작품성 무장
그리스 고전 재해석한 연극, 사람냄새 나는 창작뮤지컬 등
작지만 알찬 공연 쏟아져

웰다잉-공연사진-(5)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뮤지컬 우수작품 공모 선정작 '웰다잉'
연극 '프로메테우스'
산울림 고전극장에서 선보이는 극단 뚱딴지의 '프로메테우스' /사진제공=프로젝트그룹 일다·산울림 소극장

공연시장엔 연초부터 대형 뮤지컬 개막과 제작발표회가 잇따르며 치열한 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화려한 캐스팅과 수십 수백억 원의 제작비를 앞세운 대작 틈바구니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지만 알찬' 공연도 관객과 만난다. 젊은 감각으로 고전을 재해석한 소극장 연극과 이제 막 데뷔 무대에 오르는 창작 뮤지컬까지. 관객의 공연 장바구니를 풍성하게 만들어 줄 주인공을 만나보자.

◇산울림 '고전극장', 그리스 고전 속으로=산울림의 기획 프로그램 '고전극장'은 올해 '그리스 고전 문학'을 주제로 잡았다. 대학로 신진단체들과 함께 만들어 산울림 소극장 무대에 올리는 고전극장의 첫 타자는 공상집단 뚱딴지의 '프로메테우스'다. 지난 6일부터 공연에 들어간 이 작품의 주인공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가 감추어 둔 불을 인간에게 가져다 준 죄로 끔찍한 벌을 받는 신이다. 뚱딴지는 고대 그리스 시인 아이스킬로스의 '결박된 프로메테우스'를 각색해 무대에 올렸다. 프로메테우스의 재판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극에서 제우스는 힘과 폭력으로 신·인간을 통치하는 독재자고, 프로메테우스는 그 속에서 '말살될 것'을 알면서도 고난을 자초한다. 인간을 미천한 하루살이로 치부하고, 제우스의 뜻을 거스르면 체제 전복세력으로 규정하는 신들의 세계, 그리고 제우스의 통치 수단인 '힘과 폭력'이란 이름의 인물까지. 오늘의 우리를 보여주는 고전의 힘은 새삼 놀랍다. 1월 17일까지.


극단 해적은 '난세에 저항하는 여인들'(1월 20일~2월 5일)로 바통을 이어받는다. 아테네와 스파르타 간의 오랜 전쟁에 지친 여인들이 '섹스 파업'으로 남자들과 '또 다른 전쟁'을 선포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극단 달나라동백꽃은 아이스킬로스의 비극 3부작 '오레스테이아'를 선보인다. 현존하는 유일한 그리스 비극 3부작인 오레스테이아는 아가멤논·제주를 바치는 여인들·자비로운 여신들로 구성돼 있다.

딸을 죽인 남편을 죽인 아내, 그리고 그 어머니를 죽인 아들. 신·운명·전쟁 등 방대한 원작을 이번 공연에선 아가멤논 집안의 반복되는 피와 복수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마지막은 창작집단 LAS의 '헤라,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3월 2~13일)가 장식한다. 이 작품은 원작이 있다기보다는 여러 신화 속에 등장하는 세 여신을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올림푸스 12신 회의가 소집된 날, 일찍 도착한 세 여신이 대화를 나누며 극이 전개된다. 본인의 능력은 꽃피우지 못하고 남편 뒤만 쫓는 한심함(헤라), 진실한 마음이 아닌 색만 탐하는 역겨움(아프로디테), 욕망은 접어둔 채 처녀성에 집착하는 답답함(아르테미스). 상대를 향한 속마음이 쏟아져 나오며 세 여신의 대화에 불이 붙는다.

◇문화예술위 선정 창작뮤지컬 릴레이=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창작뮤지컬 우수작품 제작지원 작품 공모 선정작 5편도 잇따라 데뷔 공연을 펼친다. 노인들의 자살여행기를 다룬 '웰다잉'이 포문을 열었다. 이 작품은 '빨래'로 소극장 뮤지컬 신화를 쓴 추민주 연출이 참여했다. 자신의 인생을 '끝내주게 끝내고 싶었던' 신대방·남태령·구파발 세 노인의 좌충우돌 자살여행기를 통해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되짚는다. "쥐고만 있어도 녹아 버리는 게 인생이네요. 이 아이스크림처럼." 극작가 겸 시인 김경주가 써내려간 대사와 노랫말이 인생의 황혼에 선 노인들의 감성을 전달한다. 죽음·존엄사·인간 소외 등 노인을 둘러싼 묵직한 화두를 코믹한 설정으로 명랑하게 전달하고자 한 의도가 엿보이지만, 웃음과 감동이 자연스레 연결되지 않고 겉돈다는 점은 아쉽다. 1월 17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이 밖에 가출 여고생과 노처녀 여가수의 영혼이 뒤바뀌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그린 '스페셜 딜리버리'(1월 29일~2월 14일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한국을 찾은 입양아 청년의 생모 찾기와 이를 통한 성장기를 그린 '에어포트 베이비'(2월 23일~3월 16일 아트원씨어터 1관)가 관객과 만난다.

또 고(故) 이은주가 출연했던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 '안녕! 유에프오'(1월 31일~2월 14일 아트원씨어터 1관)는 시각장애인과 버스 운전기사의 좌충우돌 로맨스를 뮤지컬로 옮겨왔고, 개성 강한 수도사 세 명이 이탈리아 수도원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겪는 인간적 이야기를 그린 독일 영화 원작의 '신과 함께 가라'(2월 23일~3월 6일 동숭아트센터 동숭홀)도 새 옷을 입고 찾아온다. /송주희기자 sso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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