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 '각자의 길'로… 합의 통한 노동개혁 사실상 물거품

■ 노사정 대타협 휴지조각 될 판
野 반대커 국회통과 쉽지않고 한노총 복귀 가능성도 '제로'
노동계, 입법저지 집회 등 대정부 투쟁전선 나설듯

제 61차 중앙집행위원회3
김동만 (가운데) 한국노총 위원장이 11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대회의실에서 열린 '제61차 중앙집행위원회'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는 노사정 대타협 파기,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탈퇴 등의 안건이 논의됐다. /송은석기자


한국노총이 11일 중앙집행위원회를 통해 노사정 대타협 파기를 선언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아가고 있어 박근혜 정부가 추진해온 노동 시장 개혁이 일대 고비를 맞게 됐다. 한국노총이 공식적으로 대타협 파기를 선언할 경우 대화 재개를 위한 복귀 명분이 마땅치 않아 사실상 노동계와 정부가 '마이웨이'의 길을 가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 일각에서는 민감한 사안은 모두 뒤로 미뤄둔 채 합의를 위한 합의를 한 데 따른 '예고된 파행'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한국노총이 노사정 대타협 파기를 선언할 경우 당장 노동개혁 5대 입법(근로기준법·고용보험법·산재보험법·기간제법·파견법)과 2대 지침(일반해고·취업규칙) 등 노동개혁 추진 동력이 크게 떨어지게 됐다. 지난 9·15 노사정 대타협에서 통상임금 명확화와 근로시간 단축, 실업급여(구직급여) 확대, 출퇴근 재해 산재 처리 등에 있어 절충점을 찾았지만 야당의 반대가 커 19대 국회 통과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물 건너 갔다는 말도 나온다.

이로 인해 청년 고용 문제뿐 아니라 근로시간 단축에 관한 대법원 판결이 나올 경우 산업현장의 혼란이 가중될 수밖에 없게 됐다.

노정 갈등의 핵심이었던 2대 지침 역시 대립상황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일반해고는 저성과자나 근무태도가 불량한 근로자를 해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는 채용·인사·해고 등에 있어 근로자에게 불리한 사규를 도입할 때 근로자의 동의를 받도록 한 법규를 완화하는 것이다.


지난달 '해고는 깐깐하게, 임금피크제는 유연하게'를 골자로 초안을 발표한 정부 역시 더는 노동계와의 협의를 기대하지 않고 양대 지침을 발표할 것으로 전망돼 앞으로 노정 관계가 경색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노동개혁 5대 법안과 달리 행정지침인 2대 지침은 정부가 독자 추진할 수 있다.

여기에 정부는 지난해 313개 공공기관에 대한 임금피크제 도입에 이어 올해 공공·금융기관을 대상으로 성과연봉제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을 추진하고 있어 노동계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더 큰 문제는 노사정 대타협 의미가 훼손되면서 굉장히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기게 됐다는 점이다. 합의 파기라는 전 세계에서 유례없는 결정이 나올 경우 노사정 신뢰 관계에 생채기가 나고 노동시장 개혁과 관련해 노사정의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앞으로 노사정이 서로 협의해 문제점을 보완하고 제도를 개선하기 힘들어진다는 얘기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동법은 노동 시장과 밀접해 있어야 하고 입법과정이 굉장히 탄력적이어야 하는데 노사정 신뢰가 깨지면 현장과 법의 괴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앞으로 한국노총이 대규모 집회와 국회 입법 저지 투쟁, 총선 심판 투쟁 등 강력한 대정부 투쟁 전선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우려할 대목이다. 올 연말이면 한국노총 내부적으로도 새 위원장 선거가 있어 노사관계의 불안정성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만 한국노총이 합의를 파기할 경우 정부가 노동정책을 일방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여지가 높아지게 된다. 노동계의 목소리를 반영할 사회적 공식 대화채널이 끊기기 때문이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당분간 노사 협상이나 대화보다는 갈등적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며 "노동계가 갖고 있는 힘인 교섭력 기반을 아예 놓아버리게 된다는 위험 부담이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에 대해 노사정의 합의를 통해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본위원회에서 의결 요건과 절차 규정에 따라 정식 서명 절차를 거친 만큼 한 주체의 합의 파기로 인한 무효화는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임무송 고용노동부 노사관계정책관은 "청년고용 활성화와 비정규직 근로자 처우개선 등 노동 시장 격차 해소를 위한 광범위한 입법·행정·현장의 실천 조치를 담고 있는 대국민 약속"이라고 강조했다. /황정원기자 garde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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