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혁명] 자율주행차로 은행 온 할아버지 '로봇 행원'과 상담 후 보험 들다

■ 실생활 속으로 성큼… '팍스 로보티카'의 미래 모습은



80대 고령의 김정환 할아버지는 혼자서는 거동이 불편하다. 그러나 너싱 로봇 덕택에 혼자 화장실을 가거나 목욕을 하는 등 집안에서는 큰 불편 없이 지내고 있다. 오늘 김 할아버지는 외출할 일이 생겼다. 그는 스마트폰에 장착된 인공지능 도우미인 '김비서'를 통해 자동차를 집 앞으로 불렀다. 필요할 때마다 차량공유 서비스 업체에서 자율주행차를 빌려 이용한다. 운전을 하기가 벅찬 김 할아버지에게는 안성맞춤이다. 김 할아버지는 "A은행 상암동 지점으로 가자"고 말하자 자동차가 알아서 움직인다. "오늘 기분이 어떠세요"라는 인공지능 비서의 질문에 김 할아버지가 "조금 처진다"고 답하자 평소 그가 좋아하는 '소녀시대'의 '라이언하트'가 흘러나온다. 김비서가 자동차 운영소프트웨어(OS)에 무선으로 접속해 오디오를 가동시킨 것이다. 김 할아버지가 은행에 들어서자 휴머노이드 행원이 다가선다. 한눈에 단골 고객임을 알아본 행원은 그의 취향에 맞게 목소리를 바꾼다. 소녀시대 태연 목소리로. 김 할아버지가 "보험을 하나 가입할까 하는데…"라고 말하자 행원은 그동안 김 할아버지의 재산과 소득·가족관계 등을 고려해 적합한 상품 3개를 권유하고 상품별 특징을 설명해준다. 김 할아버지는 그중 마음에 드는 상품 하나를 골라 가입하고 다시 김비서를 시켜 차를 불러 집으로 향했다.

● 2018년부터 스마트카 시대 본격화

테슬라 호출 기능 '모델T' 개발 등 눈앞

구글·애플 IT공룡까지 가세 격전 예고


로봇과 함께 사는 시대가 머지않았다. 지난 수십년간 축적된 로봇 관련 주요 기술이 상용화 가능한 임계점을 넘어서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로봇이 확산되고 있다. 산업용 로봇뿐만 아니라 자율주행 교통수단, 군사, 개인서비스, 의료, 교육 등 각 분야에서 실생활에 성큼 우리 곁에 다가와 있다. 현재 로봇 개발 속도를 보면 김 할아버지의 예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수년 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로봇의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하드웨어 제어기술은 이미 오래전에 상당 수준까지 올라온데다 '오감기관'과 '뇌'를 담당할 센서 및 인공지능, 사물인터넷(IoT) 기술 등이 최근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주요 로봇 기술들이 융합하면서 완결된 로봇이 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정부가 군사 목적 등으로 추진해온 로봇 개발을 이제는 민간 기업들이 상용화 목적으로 주도하면서 영화에서나 가능할법했던 로봇들을 잇따라 시장에 내놓고 있다. 가히 '팍스 로보티카(Pax Robotica)'의 시대가 임박했다.

테슬라는 최근 '호출' 기능을 추가한 차량 소프트웨어를 내놓았다. 자동차키를 누르면 테슬라의 '모델T'가 스르르 굴러나와 현관 앞에 서서 차 주인을 기다린다. 테슬라는 이미 자동차선변경 등 부분 자율주행 기능을 도입한 상태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자는 앞서 오는 2018년까지 자율주행차 개발 완료를 선언한 바 있다.

로봇 빅뱅을 주도하고 있는 분야는 스마트카다. 포드사가 지난 1920년대 '모델T'를 대량생산하며 현대소비사회를 열었듯이 자율주행 스마트카는 로봇문명을 여는 주력부대다.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뿐만 아니라 구글·애플·바이두 등 정보기술(IT) 공룡들까지 시장 선점을 위해 격전을 벌이는 분야다

올해 세계 최대 가전쇼 CES와 디트로이트모터쇼에서는 주요 자동차 및 IT업체들이 2020년까지 자율주행차를 개발한다는 포부를 밝혔다.

2012년부터 최근까지 15개가 넘는 로봇 관련 기업을 인수한 구글은 이미 약 200만㎞에 달하는 시험 주행을 마쳤으며 영국 정부와 규제 개선에 대한 협의를 진행 중이다. 애플은 자율주행차 개발을 위한 '타이탄 프로젝트'를 극도의 보안 속에서 가동하고 있다.

● 공장에서 나온 로봇, 집·매장으로

음성인식·빅데이터 처리 기술 진일보

사람과 대화·서비스 로봇 속속 상용화



현대·기아차도 2020년까지 고도 자율주행차량을 개발하고 2030년에는 완전 자율주행차량을 내놓는다는 목표 아래 투자비를 쏟고 있다.

자율주행차량과 관련한 기술 수준은 상당 수준에 올라와 있다. 오히려 보험·법령 등의 사회제도가 못 따라가는 상황이다. 메리 바라 GM 회장은 CES 2016 기조연설에서 "자동차 산업은 향후 5~10년 내 지난 50년보다 더 극적인 변화를 겪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가장 먼저 로봇이 도입된 곳은 산업 현장이었다. 효율을 높이기 위한 공장 자동화 로봇은 꾸준히 발전하며 미국·일본·한국 등의 생산성을 높이는 일등 공신이었다.

그런데 이제 로봇이 공장 밖을 나와 우리 생활 곁에 전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미지, 음성인식 기술의 발달과 빅데이터 처리를 통한 스스로 배우는 기술(머신러닝)이 진일보하면서 인간과 소통하며 서비스를 제공하는 로봇들이 속속 상용화되고 있다.

지난해 페퍼에 이어 지보(Jibo)는 올해 소셜 로봇업계의 기대주다. MIT 출신 과학자가 개발한 가정용 인공지능 로봇 지보에는 LG유플러스와 삼성벤처투자도 투자했다. 집안을 돌아다니며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사진촬영, 화상전화도 연결해주는 지보는 올해 초 시장에 출시될 예정이다. 가격은 1,000달러 이하로 책정돼 대중성을 높였다.

집안뿐만이 아니다. 매장 등 서비스 현장에서 '알바' 로봇들이 벌써 취직을 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지난해 7월 나가사키에서는 직원의 90%가 로봇인 호텔이 개장했다. 체크인부터 가방 배달까지 로봇 호텔리어가 처리해주고 있다.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똑똑한 로봇을 기치로 내건 '에리카'는 뛰어난 미모로 손님들을 끌어들인다는 '상업적인' 계산이 깔린 휴머노이드다. 조만간 상담창구와 안내데스크에서 손님(특히 남자 고객들)을 맞게 될 예정이다.



● 인공지능 로봇 보급 어디까지

스마트폰처럼 '로봇 대중화'도 급물살

'범용 AI' 개발이 로봇혁명의 목표될 듯


로봇이 모든 기술과 산업을 융합하면서 4차 산업혁명의 중심에 설 것으로 예상된다.

고령화 시대를 맞아 의료용 로봇의 개발과 상업화가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웨어러블 로봇은 고령자의 보행을 돕고, 너싱 로봇과 반려 로봇은 실버세대뿐만 아니라 1인 가구 속을 파고들 것으로 보인다. 또 교육용 로봇은 외국어 교육 현장에 이미 보조 교사 노릇을 하고 있으며 향후 인공지능과 결합되면 '원어민 교사'를 수입할 필요가 없는 시대가 올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는 각 분야에 특화된 로봇뿐 아니라 범용 로봇, 범용 AI 개발이 궁극적인 로봇 혁명의 소구점이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로봇미디어연구소 산하 로봇연구단장인 오용환 박사는 "스마트폰이 이렇게 빨리 보급될 줄 예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로봇의 보급도 급속도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며 "실용성 있는 첨단 로봇 기술을 확보했느냐가 국가 경쟁력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혜진기자 hasim@sed.co.kr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