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밤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객석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폭발하는 광기(狂氣)와 강렬한 노래는 관객을 집어삼켰다. 뮤지컬 ‘레베카’의 댄버스 부인 역을 맡은 장은아(사진)는 그렇게 ‘미친 존재감’을 드러내며 첫 공연을 성공리에 마쳤다.
‘새로운 댄버스’를 보여줘야 한다는 것은 만만치 않은 과제였다. 귀족 저택의 집사인 댄버스는 주인의 전 부인 ‘레베카’에 집착하며 새 아내인 ‘나’를 위협하는 인물이다. 옥주현·리사 등 실력파 배우가 교과서처럼 만들어 놓은 캐릭터는 부담일 수밖에 없다. 장은아는 “선배들이 워낙 훌륭하게 연기했던 터라 나만의 노선을 잡는 것이 필요했다”며 “원작 소설을 읽으며 색다른 모습이 아닌 ‘원작에 충실한 댄버스’를 그리는 데 방점을 찍었다”고 설명했다.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은 강약조절이다. “댄버스 부인은 처음엔 친절한 듯하다가 서서히 ‘나’를 밀어내려는 본심을 드러내요. 그 지점이 2막 1장인데, 실체가 폭발하는 강한 인상을 주기 위해 전후 연기와 노래의 톤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어요.” 2막 1장은 선 굵은 음성의 댄버스 부인과 청아한 목소리의 ‘나’가 ‘레베카’를 부르며 대립하는 이 작품의 백미다. 톤부터 다른 두 목소리가 노래로 팽팽하게 대립하며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가운데, 180도 회전하는 발코니 세트가 영화를 보는 듯한 영상미를 만들어낸다.
지금 무대에서 쏟아내는 열정 속엔 무명 시절의 간절함이 배어 있다. “뮤지컬 데뷔 전 9년간 무명 가수였어요. 열심히 했는데 기회가 없었고, 늘 무대에 대한 갈증이 컸죠.” 노래를 놓으려던 순간 만난 게 뮤지컬이었다.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 참가를 계기로 2012년 ‘광화문 연가’에 출연한 이후 지저스크라이스트 수퍼스타, 더데빌, 서편제, 머더 발라드 등에 잇따라 캐스팅되며 뮤지컬 배우로의 입지를 다졌다.
앞으로 해야 할, 하고 싶은 작품이 더 많다는 장은아. 그는 “4년이라는 경력에 비해 레베카의 댄버스 부인은 분명 과분한 역”이라며 “부족하지만, 이번 작품을 계기로 무대에 좀 더 힘 있게 설 수 있는 배우로 거듭나겠다”고 전했다.
/송주희기자 ssong@sed.co.kr
/권욱기자 ukkwon@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