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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의 어느 날 한 원자력발전소에서 폭발 사고가 발생한다. 원자로의 열을 식혀야 할 냉각수가 유출되는데도 가압기의 자동 증기 배출 밸브가 작동하지 않는다. 냉각수가 새면 원자로가 과열되고 핵연료가 녹을 수밖에 없다. 원전의 냉각수 밸브를 잠가야 하지만 가까이 가기에는 너무 위험해 누구도 엄두를 내지 못하는 상황. 이때 사람 모습을 한 형상이 뚜벅뚜벅 사고 현장으로 들어가 냉각수 밸브를 잠그고 나온다. 몸체 여기저기에 사고 현장에서 날아온 파편이 박혔지만 움직이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 사람의 모습을 닮은 로봇, '휴머노이드'다.
최근 일본·미국을 비롯해 유럽·중국 등 과학기술 선진국을 중심으로 휴머노이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휴머노이드가 제어·기계·전자·네트워크·인공지능(AI) 등 로봇 원천기술의 총집합체인데다 먼 미래에는 재난 구조, 환자와 장애인 보조 등 사람이 하기 어렵거나 꺼리는 3D(difficult·danger·dirty) 업무까지 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예로 든 가상의 원전 사고 사례도 휴머노이드의 유용성을 보여준다.
14일 국제로봇협회(IFR)에 따르면 지능형 로봇으로 분류되는 서비스용 로봇 시장은 지난 2009년 28억100만달러에서 2013년 52억8,200만 달러로 4년 동안 88.58%나 성장했다. 연평균 성장률이 약 17%에 달할 정도로 고속 성장하고 있다.
특히 이 가운데 휴머노이드는 미래 지능형 로봇 원천기술의 총집합체라는 점에서 중요한 로봇 연구 분야로 꼽힌다. 휴머노이드는 인간의 힘이 닿지 않는 곳에서 절대적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라 기술 수준이 닿을 경우 사람의 신체를 닮은 만큼 다른 로봇이 구현하는 대부분 기능을 모두 도맡아 할 수 있다. 심해·우주 등 극지 탐사, 환자나 고령자를 돕는 업무, 인간의 오감을 모방하기 위한 각종 센서를 통한 감성 교류, 인공지능을 통한 의사소통 등 적용 분야가 무궁하다. 유범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로봇연구단 책임연구원은 "휴머노이드 안에는 많은 원천기술이 포함돼 있어 미래 어떤 로봇을 만들더라도 이를 활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휴머노이드에 대한 각국 정부 차원의 투자 규모는 아직 미미하다. 천문학적 비용이 소요되는 데 단기간에 실용화될 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전까지만 해도 휴머노이드 개발 부문에서 가장 앞선 나라 중 하나는 일본이었다. 그러나 일본을 대표하던 신형 휴머노이드인 '아시모'가 원전 사고 당시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하자 비판 여론이 고개를 들었고 정부 투자도 주춤해졌다.
반면 미국은 투자를 지속적으로 활성화하고 있다. 일본과 반대로 원전 사고 이후 주로 재난 구조 분야를 중심으로 정부 차원의 투자가 최근 이뤄지고 있다. 미국 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다르파)이 주관하는 '세계 재난로봇 경진대회(DRC)'가 인기를 끌면서 대중의 관심도 부쩍 늘었다. 독일도 최근 정부 차원의 휴머노이드 연구개발(R&D) 프로그램을 가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이 분야에서 아직 후발국이지만 최근 적극적인 투자로 선진국 휴머노이드를 모사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지원 환경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1999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센토'라는 첫 휴머노이드 개발로 출발한 한국은 미국·일본과 함께 이 분야에서 세계 3대 강국의 반열에 올랐다. 특히 지난해 6월에는 오준호 KAIST 기계공학과 교수팀이 '휴보(HUBO)Ⅱ'라는 휴머노이드로 DRC에서 우승하는 쾌거를 이뤘다. 그러나 정부는 오히려 투자 지원을 뚝 끊었다. 휴머노이드 연구의 주축을 이뤄온 KIST만 해도 2010년 이후 정부 지원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김정회 산업통상자원부 기계로봇과 과장은 "재난 대응 로봇은 현재 선도적인 기술 보유 국가가 없는 상황으로 미국·일본·유럽 등 선진국들이 세계 시장 선점을 위해 R&D, 경진대회 개최 등 다양한 전략 투자를 진행 중"이라고 소개했다.
/윤경환기자 ykh22@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