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폐기를 완료한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가 이르면 15일께 해제돼 원유 수출이 재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화약고'인 중동의 골칫거리 하나가 제거된 셈이지만 유가 하락에 가속도가 붙어 세계 경제의 시름이 깊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13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 있는 국방대 연설에서 "이란 외무장관이 바로 어제 (아라크) 플루토늄 원자로의 '칼란드리아(원자로 용기 내 압력관)'를 제거했으며 수시간 안에 콘크리트로 채워 폭파할 것이라고 알려왔다"고 말했다. 케리 장관은 "이란의 핵 프로그램 축소를 충분히 입증하고 이에 맞춰 이란에 대한 제재를 풀기 시작하는 '이행일'은 며칠 내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란 핵 폐기와 관련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최종 보고서는 15일 공개되며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과 페데리카 모게리니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가 공동 기자회견 형식으로 이행일을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차관은 이행일이 16일 또는 17일에 공식 선언될 것이라고 이날 밝혔으며 AP통신은 "이란에 대한 제재 해제일은 15일이나 16일이 유력하다"고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로이터통신도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제재 해제를 위한 준비가 끝났다. 이제 버튼 누르기만 남았다"는 소식통의 말을 전했다.
이란 제재 해제에 대한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는 미국 의회 다수당인 공화당은 이날 행정부의 제재 해제를 막는 '이란 테러금융 투명화 법안'을 찬성 191명, 반대 106명으로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이란에 대한 제재 해제에 앞서 의회 검토를 의무화하고 제재 해제 시 대상자와 기관에 대한 대통령의 서면보증을 의회에 제출하도록 한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 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예정이어서 이란 제재 해제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글로벌 경제는 이란의 시장 복귀를 마냥 환영할 상황이 아니다. 이란은 세계 4위의 원유 매장량을 보유한 원유 대국이다. BBC 등 외신에 따르면 이란은 하루 원유 생산량을 현재 280만배럴에서 480만배럴로 70% 이상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수출량도 현재의 두 배인 하루 200만배럴로 늘린다는 게 이란 정부의 방침이다. 앞서 미국도 40여년 만에 원유 수출을 재개하기로 한 상황이어서 이란의 석유 수출은 저유가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가능성이 높다. 국제유가는 최근 12년 만에 장중 30달러 아래로 떨어졌으며 일각에는 20달러 붕괴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날 저유가가 세계 경제에 마이너스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원유 등 원자재 수출에 의존하는 자원신흥국의 경기 침체가 선진국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이로 인한 주가 하락과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실물경제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저유가로 중동 국가 간 대립이 심화돼 중동 정세가 악화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마쓰오카 미키히로 도이치증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저유가로 원유 수입국의 가계부담이 줄고 기업의 수익이 개선될 수는 있겠지만 유가 하락의 원인 중 하나가 경기 침체인 만큼 설비투자나 개인소비로 이어지기보다는 저축이 더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능현기자 nhkimchn@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