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대로 싱겁게 끝이 난 대만 총통선거는 의외의 사건(쯔위 사건)이 나비효과를 일으키며 양안관계를 긴장으로 몰아넣었다. 56.2%의 득표율로 당선이 확정된 차이잉원은 지난 16일 오후8시30분(현지시간)께 대만 총통 당선자로 첫 기자회견을 열고 "어떠한 형태의 압박도 양안 안정을 해칠 것"이라며 중국에 경고를 보냈다. 총통선거 직전까지 선거운동에서 양안관계 변화에 불안감을 보이는 중도층을 끌어들이려 '현상유지'를 주장했던 모습과는 상반된 발언이다.
차이 당선자는 양안이 평화안정을 유지해야 한다고 전제하면서도 "과거 양안관계의 정책적 착오는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마잉주 정권의 지나친 친중 정책을 수정할 계획임을 분명히 한 셈이다. 이어 그는 "우리의 민주제도·국가정체성·국제지위는 반드시 충분히 존중을 받아야 한다"며 "예측 가능하고 지속 가능한 양안관계를 중시하겠다"고 강조했다. 대만 독립을 직접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다양한 외교·통상정책으로 중국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의미다. 차이 당선자는 미국·일본과 관계를 강화하겠다고 밝히며 민감한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 해상통행의 자유가 보장되고 영유권은 국제법에 따라야 한다고 언급하며 중국을 자극했다. 앞서 차이 당선자는 지난해 5월 미국 방문에서 경제는 물론 군사적으로도 미국과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중국 역시 이에 맞서 '하나의 중국' 원칙을 재차 강조하며 차이 당선자에게 경고장을 보냈다. 훙레이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대만 내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대륙과 대만이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며 "대만 독립 반대입장에는 변화가 없고 앞으로도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관영매체들도 차이 당선자의 발언에 앞다퉈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인민일보는 사설에서 "민주진보당이 정지선을 넘는다면 막다른 골목에 이를 것"이라며 "양안은 평화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만 정치 전문가와 주요 외신들은 차이 당선자의 기자회견 발언에 대해 쯔위 사건으로 흥분한 지지자를 고려한 내부정치용이라고 해석하며 오는 5월20일 총통 취임까지는 적정 타협점을 찾기 위한 노력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왕쿵이 탄장대 교수는 "서로 정치적 접점이 없어 탐색기를 거치겠지만 중국도 선택의 여지가 없는 만큼 차이 당선자 측과 대화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차이 당선자는 정치적으로는 양안관계에 대해 속도조절을 하더라도 경제회복을 위한 통상확대·재정회복·소득분배 등 3대 정책에는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승리가 변화를 바라는 젊은 층의 지지기반 위에 마잉주 국민당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에 실망한 중산층과 중도세력이 가세해 이뤄졌기 때문이다. 특히 20년 동안 국민당의 중국 의존 정책으로 위축된 서방 기업들의 대만 투자 확대를 위해 적극적인 개방정책을 펼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해 대만 경제전문 매체인 차이징중신은 '4대 대외무역 협상'이 신정부의 우선 과제라고 지적했다. 우선 1994년 미국과 무역투자기본협정(TIFA) 체결 이후 11년째 협상이 지지부진한 상호투자협정(BIA)을 체결해 대만 내 외국인 투자를 확대하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가입을 최대한 서둘러 미국·일본의 경제 우산 아래에 다시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또 중국의 눈치를 보며 미뤘던 동남아·중남미 국가들과의 자유무역협정(FTA)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같은 행보에도 중국과의 경제협력이 급격하게 위축되지는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차이징중신은 "중국과의 상품·서비스협정은 중국이 수용할 수 있을 정도의 수정안이 제시될 것"이라며 "민진당 정부도 양안 경제협력을 줄이거나 낮출 수 없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재정악화의 주범인 조세제도의 개선과 소득분배 불평등의 상징인 부동산 가격 안정도 새 정부가 해결해야 할 과제다. /타이베이=김현수특파원 hski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