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韓·대만, 서로 배워야 할 때

박한진 KOTRA 타이베이무역관장

박한진

한국과 대만 사이에는 '잃어버린 20년'이 있다. 지난 1992년 단교 이후 한국은 대만에 무관심했다. 대만은 한국을 경쟁상대로 생각했다. 오죽하면 연결고리는 '꽃보다 할배'밖에 없다는 얘기까지 나올까.

중국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대만은 매력적인 시장이다. 우리의 대만 수출은 대독일 수출의 2배, 대영국 수출의 3배나 된다. 아시아 밸류체인의 길목에 위치해 중국·동남아와 연계성도 좋다. 비관세장벽과 통상마찰이 크지 않은 장점도 있다.

하지만 단교 후 대만에서는 반한(反韓) 분위기가 퍼졌다. 이후 경쟁의식이 따라서 커졌다. 선거 때면 한국 공격으로 표심을 잡으려는 정치인도 등장하곤 했다.


이번 대선과 총선 과정은 달랐다. '한국 때리기'가 없었다. 한국을 경쟁상대로 보기에는 격차가 너무 벌어졌다는 판단을 한 듯하다. 대만 경제부는 "한국이 미국·중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대만을 따돌리고 있다"는 보고서를 잇달아 내놓았다. 한국이 경쟁상대에서 학습 대상으로 바뀌었다.

오는 5월20일 차이잉원 총통 체제가 출범한다. 신정부의 대중국 정책은 속도조절이 예상된다. 지난 8년간 국민당 정부의 친중 행보가 변하게 됐다. 미일 관계는 강화 쪽으로 가닥을 잡는 듯하다. 양안 문제가 미중 관계의 핵심 이슈로 돌아올 조짐이다. 그렇다고 대만과 미국·중국이 당장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가능성은 크지 않다. 누구도 강한 카드를 내기 어려운 상황이라 일정 기간 탐색기가 예상된다.

한국과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어떤 형태로든 변화 가능성이 보인다. 변화의 핵심은 '한국 경제 학습'이다. 대만은 한국을 FTA 선진국으로 보며 부러워하고 있다. 한국의 통상정책과 국내 의견수렴 과정은 대만에 좋은 본보기다. 대만 언론과 기업계는 한국의 신산업 육성정책과 글로벌 시장전략을 배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대만은 한때 '아시아 4룡'의 선두주자로 불렸다. 지금은 경제성장률이 1% 내외로 추락했다. 경쟁력 회복을 통해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한국 학습이 중요한 과제다.

한국도 대만에서 배울 것이 많다. 세계적인 '중소기업 강자'가 된 비결과 중소기업의 중국 내수시장 진출비법, 중국 대체시장인 동남아시장 공략방법은 대만이 경험과 경쟁력에서 앞선 분야다.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대만과의 정치외교적 관계는 앞으로도 제한적이다. 대신 경제적으로 상호학습에 나서 주고받는다면 새로운 기회가 생길 것이다. 과거 대만 경제는 중국 진출로 발전했다. 지금은 과도한 중국 의존으로 오히려 신음하고 있다. 우리가 5년 후, 10년 후 겪게 될 중국 후유증을 미리 보여주는 셈이다. 그런 측면에서도 대만은 관심과 관찰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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