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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붉은 원숭이의 해다. 원숭이의 종잡을 수 없는 성격처럼 새해 벽두부터 연이어 대형 사건들이 줄을 잇고 있다. 한파가 지구촌을 강타해 한반도는 영하20도에 가까운 강추위에 떨고 있다. 글로벌 경제는 중국발 위기 가능성에 잔뜩 휘청거리고 있다.
그러나 2016년 우리가 기후 변화나 중국발 경제 불안보다 걱정해야 할 일은 북한이 아닐까 생각한다. 새해 들어서자마자 북한은 수소폭탄 실험이라고 주장하는 네 번째 핵실험을 단행했다. 북한은 대중 관계나 남북 관계에 상관없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핵실험을 단행해왔으며 결국 그들은 착실하게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는 셈이다. 4차 핵실험은 우리에게 핵탄두를 실은 북한의 핵미사일 부대가 실전에 배치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소진됐음을 의미한다.
이번 4차 핵실험으로 우리 외교는 북한의 핵무장을 기정사실화할 것인지 아니면 국제공조로 북한의 핵무장을 막기 위한 사실상 마지막 계기를 마련할 것인지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북한은 세 차례의 핵실험을 거치면서 네차례의 유엔결의안에 따른 국제 제재를 경험했지만 견딜 만하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다. 핵실험을 하면 국제사회는 북한을 비난하고 일정한 제재를 담은 유엔결의안을 채택하지만 1~2년 지나면 대북 관계를 회복하고자 했다. 중국도 북한을 맹비난하고 유엔결의안에 찬성해왔지만 북한 체제의 붕괴를 우려해 솜방망이 결의안이 되도록 역할을 해왔다. 우리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직접 당사자이면서도 미북 간의 문제인 양 중재자 역할을 자임한 시절도 있었다.
4차 핵실험에도 국제사회가 과거와 동일한 대응을 한다면 우리는 5차·6차 핵실험을 목격할 것이고 북한의 핵무장은 현실화할 것이다. 북한은 최근 '하늘이 두 쪽 나도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을 천명했다. 하늘이 두 쪽 날 정도의 강력한 제재가 없다면 핵 포기를 위한 진지한 협상은 기대하기 어렵다. 많은 전문가가 북한이 정권 존립을 위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북한 정권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을 정도의 국제 제재 틀이 마련돼야만 북한은 핵 포기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란 핵 타결 경험을 보면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과 독일은 탄탄한 공조로 강력하고 효과적인 경제 제재를 도출했고 결국 이란의 핵 포기를 이끌어냈다. 반면 북핵과 관련해서는 원활한 국제공조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우리는 남북 관계를, 미국은 중동에서의 테러와의 전쟁을, 중국은 북한 체제의 안전을, 그리고 일본은 납치 문제를 북한 비핵화보다 우선시했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지난 25년간의 협상 과정을 보면 북한의 주장을 받아들여 평화협정, 대미 관계 개선, 에너지 지원, 경제협력 등 당근만 강조됐지 효과적인 채찍은 없었다. 결국 튼튼한 국제공조를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강력하고 효과적인 포괄 제재안을 만드는 것은 만시지탄이지만 북핵 해결의 핵심이며 반드시 해야 할 과제다.
그런데 이 일은 우리가 주도해야 한다. 미국은 혼돈의 중동 사태에 매몰돼 있고 오는 2월부터 대통령선거전에 돌입한다. 중국은 북한 체제의 안전을 우선하는 전통적 이해로 고민에 빠져 있다. 국제사회는 북핵 문제에 피로감을 갖는다. 북핵의 최대 피해자이며 당사자인 우리가 주도하지 않으면 누가 할 수 있을까. 누구도 우리보다 북핵을 막는 데 절실하지 않다. 혹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한다.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을 겪고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한미일중러 공조를 굳건히 하고 강력하고 효과적인 포괄 제재안을 조율하기 위해 5자회담 추진이 필요하다.
윤덕민 국립외교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