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직된 비축시스템… 연간 석유물량 2월에 고정하면 못고쳐(3면)

■ 저유가시대 석유 비축 딜레마
재고 늘리면 관리비용부담 커지는 구조도 문제
유가흐름·에너지산업 변화 고려해 목표 정해야
정부, IEA 권고치 웃돌아 추가물량 확보에 난색



국제유가가 배럴당 50달러선이 붕괴됐던 지난해 9월. 당시 러시아 정부가 주최한 행사장을 찾은 윤상직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셰일오일 공급과잉에도 국제유가는 40달러 미만으로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제유가는 정부의 바람과는 반대로 움직였다. 4개월이 지난 현재 유가는 50달러선에서 다시 반 토막 나 25달러 밑으로 내려갔다.

유가 예측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전문가들조차 유가 예측은 럭비공이 어느 방향으로 튈지를 가늠하는 것과 같다고 말할 정도다.

결국 중요한 것은 대응이다. 비축유 확보도 잘못된 유가 예측에 기반을 둘 가능성이 높은 만큼 비축유 확보 시기를 탄력적으로 가져갈 필요가 있다. 강승진 한국산업기술대 교수는 "(석유 비축은) 가격 관점에서 볼 경우 유가가 쌀 때 비축을 늘리면 당연히 좋다"면서 "다만 현재 우리 비축유가 적은 양이 아니기 때문에 재고관리 비용, 수요 예측 등 다양한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매년 2월에 정한 연간 비축물량 수정 안 돼=정부는 유가 변동에 따른 피해를 줄이기 위해 비축유의 75%는 매년 1·4~3·4분기(1~9월) 평균 유가를 기준으로 계약하고 25%는 4·4분기에 시장 가격으로 사들인다.


75%는 일종의 프로그램 매매처럼 3·4분기까지의 평균 가격으로 기계적으로 매입하고 나머지 25%만 정부가 재량을 갖고 매입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매년 2월 산업부 홈페이지를 통해 고시하는 당해 연도 석유비축계획 물량이 한번 정해지면 수정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1년간 사들여야 하는 비축유 규모가 정해진 만큼 중간에 유가가 이상 변동을 보일 경우 유연한 대응 자체가 어렵다. 정부가 매입에 따른 권한을 발휘할 수 있는 25%의 물량도 10~12월에 얼마를 매입할지 안배하는 정도에 그친다.

사들인 원유를 활용하는 방안이 극히 제한적이고 관리비용이 많이 드는 점도 비축유를 늘리는 데 한계로 작용하고 있다.

비축유는 비상시 정유사에 대여하는 것만 가능할 뿐 싼 원유를 샀다가 오르면 파는 차익 매매가 불가능하다. 여기에 관리비용도 만만찮다. 우리나라가 138일간 사용할 수 있는 9,260만배럴에 달하는 원유는 품질 저하를 막기 위해 제트믹서를 이용, 주기적으로 저어줘야 한다. 위험물안전관리법에 따라 11~12년마다 탱크를 다 비우는 개방점검도 해야 한다. 쌓아두는 것 자체가 돈인 셈이다. 강 교수는 "원유를 가만히 두면 무거운 물질이 가라앉는 상분리 현상이 발생해 품질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저유가·신재생에너지 시대 맞춘 비축유 계획 필요=전문가들은 비축유 계획을 저유가 기조에 맞춰 다시 한 번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정부는 1980년부터 10년을 주기로 석유비축계획을 짜고 비축을 시작했다. 현재 저장된 9,260만배럴은 25년간 수입해 쌓아온 원유다. 현재 비축유는 2014년 말에 세워진 제4차 석유비축계획에 따라 오는 2025년까지 1억700만배럴을 쌓게 돼 있다. 비축계획 수립 당시에는 유가가 배럴당 80달러를 웃돌았고 지난해 유가 전망도 40~60달러선에서 맞춰져 있었다. 현재와 같은 유가 급락을 예측하지 못해 비축물량을 보수적으로 잡았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도 계획 수정이 필요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산업부의 한 관계자는 "3차 석유비축계획(2004~2013년)도 10년간 세 차례 수정됐다"면서 "상황 변화에 따라 비축유를 늘리거나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비축량을 점진적으로 줄여야 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정부가 4차 비축계획보다 8개월 뒤에 발표한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15~2029년)은 경제성장률 둔화와 기업·가계 에너지효율 향상을 반영해 연평균 전력수요 증가율을 6차(2.2%)보다 낮은 2.1%로 설정했다. 여기에 전체 발전설비 가운데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2014년 2.1%에서 2029년 4.6%까지 늘리기로 했다. 비축량의 기준이 되는 전체 원유 소비가 줄 수 있다는 뜻이다. 강 교수는 "유가 흐름이 비축유 확보 계획에 중요한 변수이지만 에너지 산업의 변화도 반영해야 한다"며 "비축유 활용 방안에 대해서도 좀 더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구경우기자 bluesquare@sed.co.kr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