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투자자 울리는 '검은 거래' 언제까지…

대낮에 검은돈 챙기는 증권사 직원… 투자자 손실 아랑곳 않는 '관행'까지
환부 도려내는 수술·체질개선 절실


여의도 금융가가 잔뜩 움츠러들고 있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을 앞두고 높아진 경계심에 떨어지는 주가 때문만이 아니다. 검찰의 칼날이 금융투자업계의 구조적 비리를 파헤치면서 불똥이 어디까지 번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더 큰 이유다.

2년여 전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첫 국무회의에서 주가조작에 대한 강경한 대처를 주문했다. 첫 국무회의라는 상징성을 감안할 때 다소 의외의 주제였다.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테마주라는 이름으로 대통령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기업들의 주가들이 치솟았었다. 그런 부분에서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엄격한 박 대통령으로서는 용납하기 어려웠던 게 아닌가 하는 등의 발언 배경에 대한 추측들이 무성했다.

시간이 제법 흘렀지만 주식시장을 둘러싼 범죄에 대한 엄단을 왜 박 대통령이 강조했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 발언을 기점으로 시작된 검은 거래에 대한 수사 결과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미 200여명의 관련 사범들이 구속됐다. 여기에는 주가조작범뿐 아니라 상장기업대표, 국내외 증권사 임직원, 펀드매니저 등도 포함돼 있다. 지난 2월 금융기관 본점과 한국거래소가 밀집한 여의도를 관할하는 서울남부지검은 금융수사 중점검찰청으로 지정돼 주가조작 세력 소탕에 초점을 맞췄던 수사가 금융투자업계의 구조적 비리로 옮겨 오면서 그 파장은 더욱 커지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시장에는 버블이 있기 마련이며 관행이라는 것도 있는데 수사당국이 너무 강하게 나오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보교류, 기업 탐방 등 업무에 필요한 일조차도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검찰 수사를 통해 드러난 실상을 본다면 그런 주장을 하기 힘들 것이다. 얼마 전 구속된 한 대형증권사의 중간간부 김모씨. 그는 지난 2년 동안 블록딜(장외대량매매) 160건을 주선하면서 개인적으로 60억원에 가까운 거액을 챙겼다. 그는 버젓이 대낮에 여의도의 까페·공원 등에서 수천만원씩 든 쇼핑백을 건네받았다고 한다.

더 큰 문제는 다른 데 있다. 그가 주로 주선한 블록딜은 코스닥 상장사 대주주들의 지분이다. 기업도 시원찮고 시장에 일시에 많은 물량을 내놓으면 주가 급락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 예상한 기업주들은 그에게 웃돈을 주고 거래 주선을 요청했다. 그는 이 지분들을 펀드매니저들에게 뇌물을 주거나 대형증권사라는 배경을 이용해 사도록 만들었다. 지분을 사들인 펀드의 수익률은 당연히 떨어졌고 피해는 고스란히 펀드에 투자한 일반개인들에게 돌아갔다. 또 전문지식을 활용해 페이퍼컴퍼니를 세우고 컨설팅 명목으로 돈을 수수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자금세탁을 한 사례도 적발됐다. 이처럼 수많은 비정상적인 영업행태가 관행이라는 명목으로 업계에 퍼져 있을 공산이 크다. 금융의 근간인 신뢰가 흔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수년째 코스피지수가 2,000에서 맴돌고 있는 것도 어쩌면 투자자들이 시장을 믿지 못하고 차익이 생기면 팔고 떠나는 데 따른 결과물일 수도 있다.

금융투자업계는 뒤늦게나마 내부통제 시스템을 다시 점검하고 블록딜을 본사로 통합하는 등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금융당국도 증권범죄를 다루는 제도보완을 추진한다고 한다. 자본시장의 속성상 범죄행위를 근절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시작된 수사이니만큼, 정권이 바뀌면 흐지부지되지 않겠느냐는 말도 나돈다.

이 때문에 검찰의 수사와 당국의 제도보완, 업계의 자정노력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만 범죄의식 없이 투자자들의 돈을 강탈하는 행위가 줄어들고 시장과 업계에 대한 신뢰는 높아질 것이다. 남부지검이 모델로 삼고 있는 '월가의 저승사자' 미국 연방검찰청 뉴욕남부지검은 1960년대부터 월가를 둘러싼 범죄 소탕에 나섰고 50여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환부를 도려내는 수술과 체질을 바꾸는 업계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학인 증권부장 leejk@sed.co.kr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