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단 자구안 수용땐 현대증권 즉시 공개 매각

현정은 사재출연… 현대상선 살린다
파킹딜 의혹 해소 의지
현대그룹 자구안 제출

현대그룹이 채권단이 자구안을 수용하는 즉시 현대증권에 대한 공개 매각을 단행한다. 현대그룹이 조기에 공개 매각을 진행하기로 한 것은 일본계 사모펀드인 오릭스와의 매각 과정에서 실제 매각이 아닌 일시적으로 지분을 맡긴 뒤 현대그룹이 다시 사오는 조건의 '파킹딜' 의혹까지 불거짐에 따라 투명성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현대그룹은 이와 함께 소규모이지만 채권단에 성의를 표시하는 차원에서 현정은(사진) 회장이 사재를 출연하기로 했다.

31일 해운업계와 금융계에 따르면 현대그룹은 지난 29일 채권단에 △현대증권의 완전 공개 매각 △대주주 사재출연 △벌크선 매각 및 유상증자 등을 핵심으로 하는 추가 자구안을 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당초 약속대로 지난주 후반 자구안을 제출했다"며 "이번 자구안의 핵심은 (채권단이 자구안을 승인한다는 전제 아래) 현대증권을 즉시, 그리고 공개매각 형태로 전환해 진행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 측은 채권단과의 협의 결과에 따라 설 연휴 직후라도 곧바로 매각에 착수해 늦어도 6개월 안에 매듭 지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애초 현대증권은 지난해 일본계 사모펀드 오릭스에 팔릴 예정이었지만 오릭스가 대주주로 적격한지 여부부터 실제 매각이 아닌 일시적으로 지분을 맡긴 뒤 현대그룹이 다시 사오는 조건의 '파킹딜'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지난해 10월 매각이 무산됐다. 지난번 현대증권 매각 방식을 두고 여러 잡음이 나온 끝에 불발된 만큼 이번에 현대증권을 다시 매각할 때는 현대그룹에서 완전히 분리돼 새 주인을 찾는 형식이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현대증권 등 금융 3사 매각액이 6,457억원이었던 점을 고려할 때 이번에도 비슷한 규모로 팔릴 경우 현대그룹 유동성에도 한결 여유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현대증권 매각 방침이 확실해지면서 현대그룹이 현대상선을 포기할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현 회장의 사재출연도 이번 자구안에 포함됐다. 현 회장이 보유한 현대엘리베이터와 현대글로벌, 현대유앤아이 등 계열사 지분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현대상선 차입금 상환에 쓰는 방식이 유력하다.

현 회장의 사재 출연 규모는 많아도 100억~200억원 수준이어서 그룹의 부채를 줄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채권단에 오너일가가 책임을 함께 지겠다는 뜻을 보여줌으로써 추가 지원을 이끌어내는 데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분석된다.

이밖에 부산신항만 터미널 등 자산의 추가매각과 유상증자, 영업손실의 주된 원인인 값비싼 용선료 재협상 등도 자구안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측은 다만 고용선 문제가 해결되려면 정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현대그룹이 고강도 자구안을 다시 제출함에 따라 채권단은 기존 부채 일부를 출자전환하는 방식으로 현대그룹의 부채비율을 낮춰주고 금융비용을 최소화시키는 한편 기존 대출의 만기를 연장시켜주는 등 지원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자구안이 확정될 경우 현대그룹은 유동성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룹의 중심인 현대상선의 수익성 회복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해운업계의 한 관계자는 "추가 지원이 밑빠진 독에 물붓기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현대상선의 수익성이 회복돼야 한다"고 말했다.

/임진혁기자 liberal@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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