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25일 막걸리 한 병 반을 마시고 집에 돌아온 홍모(63)씨는 이웃 정모(49)씨가 자신의 집 앞에 쌓아 놓은 알루미늄 자재를 보고 화가 났다. 평소엔 참고 넘겼지만 이날은 취기가 돌아서인지 정씨를 불러 강하게 따졌다. 한참 말다툼을 벌이다 홍씨는 집으로 들어가 칼날 14cm 길이의 과도를 들고 나왔다. 이후 “죽여버리겠다”며 정씨의 배를 5cm 깊이로 찌르고는 집으로 다시 들어가버렸다. 정씨는 병원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과다 출혈로 쇼크가 오기도 했지만 다행히 목숨은 건졌다.
검찰은 홍씨가 “죽이겠다”고 말하며 칼로 찔렀고 다친 정씨를 병원에 데려가지도 않았다며 살인미수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하지만 법원은 홍씨의 살인 미수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두 사람 사이 평소 큰 다툼이 없었고 공격도 한 차례에 그친 점 등으로 미뤄 살해할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홍씨가 칼로 찌른 이후 “죽여버리겠다”고 여러 차례 말한 것을 목격했다는 증언에 대해서도 “공격 행위 이전에도 그런 말을 했는지, 죽이겠다는 말이 단순한 위협의 의미인지 판단하기 어렵다”고 봤다.
살인미수는 살인을 의도하거나 자신의 행위로 상대가 죽을 수 있겠다는 예견을 한 것만으로도 인정되지만 재판부는 홍씨의 경우 이런 법리를 엄격히 적용했다. 이 재판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됐는데 배심원 9명 중 1명만이 살인 미수에 유죄 의견을 낸 점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서울남부지법 형사11부(위현석 부장판사)는 홍씨에 ‘위험한 물건으로 사람을 다치게 한 죄’인 특수상해죄만 적용해 2년 6개월을 선고했다. /서민준기자 morandol@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