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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스커피 시장이 대형 식음료업체의 무덤이 되고 있다. 서울우유, 농심 등 대형업체들이 호기롭게 출사표를 던졌지만 동서식품이 장악한 믹스커피 시장에서 줄줄이 쓴 맛을 맛보고 있는 것. 한때 동서식품과 양강 구도를 형성했던 롯데네슬레(구 한국네슬레)마저 곤두박질친 점유율을 회복하지 못하면서 일각에서는 다음 철수 주자가 아니냐는 우려까지 제기된다.
라면업체 부동의 1위 농심은 2013년 신춘호 회장의 특명 아래 기능성 믹스커피 '강글리오'를 선보이며 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하지만 매출 부진으로 출시 2년 만에 무릎을 꿇어야만 했다. 회사 측은 "철수가 아닌 리뉴얼 검토 중"이라고 밝혔지만 마트에서는 강글리오를 반년 이상 팔지 않고 있다. 서울우유가 같은 해 내놓은 '골든카페 모카골드'도 매대에서 자취를 감췄다. 캔 커피 '칸타타'의 선전에 힘입어 믹스커피 '칸타타'를 선보인 롯데칠성음료도 고전 끝에 믹스커피 사업을 접었다. 남양유업이 2011년 출시한 믹스커피 브랜드인 '프렌치카페'도 한때 시장점유율 20%를 차지하며 동서식품의 '맥심'을 맹추격했지만 현재 10%대의 점유율을 근근이 유지하는 상황이다.
식음료업체가 믹스커피 시장을 두드리는 이유는 매년 규모가 줄어도 여전히 알짜 시장이기 때문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발표한 '가공식품 마켓 리포트 조제커피편'에 따르면 지난해 믹스커피 소매시장 규모는 1조565억원으로, 전년 동기대비 5.7% 떨어졌다. 업계 관계자는 "전체 커피시장의 70%를 차지하는 믹스커피 분야는 분말·음료 제조에 특화된 식음료업체에게는 매력적인 분야"라고 말했다.
하지만 후발주자들은 '철옹성' 동서식품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동서식품이 철저한 맞춤형 전략으로 경쟁사의 제품을 무력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1976년 업계 최초로 커피알갱이, 프림, 설탕으로 구성된 포장형 믹스커피를 출시한 동서식품은 꾸준히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커피를 선보이고 있는 중이다.
업계에선 동서식품의 다음 제물로 롯데네슬레를 꼽는다. 2000년대 중반까지 2위였던 롯데네슬레는 2010년 남양유업에게 추월당한 뒤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2012년 믹스커피 '테이스터스초이스'를 '네스카페'로 전면 리브랜딩했지만 이듬해 오히려 점유율이 3.9%까지 고꾸라졌다. 2014년 롯데그룹이 한국네슬레 지분 50%를 인수해 롯데네슬레를 출범시키는 한편 롯데칠성음료의 믹스커피 칸타타 생산까지 중단하며 몰아주기에 나섰지만 영향력은 미미한 수준이다.
글로벌 1위 식음료업체 네슬레가 유독 한국에서 맥을 못 추는 이유는 안일한 시장 대응 탓이 크다. 유행 주기의 급변에 비해 글로벌 본사와 한국지사 간의 의사 교류 시간이 오래 걸리는 한편 현지화에 맞춘 제품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지윤기자 lucy@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