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대통령과 꼭 닮은 여성 대통령이 페루에서 탄생할 것으로 보인다. 오는 4월 페루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현재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는 게이코 후지모리(40·사진) 민중권력당 후보가 주인공이다. 게이코 후지모리 후보는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대통령의 딸로 어린 나이에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한 경험이 있고 시장경제주의와 보수적 정치 성향 등에서 여러모로 박 대통령과 닮은 것으로 평가된다.
최근 블룸버그는 후지모리 전 대통령의 딸 게이코가 그의 아버지를 이어 페루 대통령에 당선될 가능성이 크다며 그가 아버지의 불명예와 과오를 어떻게 극복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계 이민 2세로 아시아인 최초로 페루 대통령까지 오른 후지모리 전 대통령은 지난 1990년 취임하자마자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고 정치안정을 위협하는 세력을 진압해 페루 발전을 이끌었다. 하지만 연임을 위해 군부와 손잡고 쿠데타를 일으켜 의회를 강제로 해산하고 헌법을 개정하는 한편 사법부와 언론을 장악하며 정치적으로는 독재자라는 비난을 받았다. 결국 비리가 탄로 나면서 집권 10년 만에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그는 2000년 일본으로 도주했다가 2005년 체포돼 2010년 25년형을 받고 지금도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아버지의 과오로 자신의 정치행보에 제동이 걸릴 것을 우려한 게이코 후지모리는 일찍부터 청렴을 강조하며 "대통령이 돼도 재임 기간 중 아버지를 절대 사면하지 않겠다"고 아버지와의 관계에 선을 그었다. 아울러 유세 과정에서도 게이코 후지모리는 아버지가 행한 과오에 대해 머리 숙여 사과했다. 하지만 블룸버그는 2011년 대선 때 게이코 후지모리는 아버지의 잘못을 용서해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며 지금도 대통령에 당선되면 아버지의 무고함을 입증하기 위해 법적 싸움을 벌이겠다고 말하고 있어 아버지에 대한 그의 입장이 어떨지는 두고 볼 일이라고 지적했다.
역설적이게도 게이코 후지모리가 압도적 지지를 얻는 것은 아버지의 후광 효과 때문으로 분석된다. 1994년 부모님의 이혼 후 19세에 아버지와 동행하며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해 얼굴을 알린 그는 2006년 처음으로 페루 의회에 입성해 정치경력도 짧고 그동안 겨우 6건의 법안을 발의하는 등 이렇다 할 성과도 내지 못했다. 하지만 앞선 여론조사 결과 게이코 후지모리는 치안과 빈곤탈출 부문에서 다른 후보들보다 월등히 높은 지지도를 얻었다. 이 두 부문은 후지모리 전 대통령이 가장 높이 평가받는 부문으로 게이코 후지모리 지지자들은 그가 아버지 시대의 영광을 재연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최근 중남미 좌파 정권의 잇따른 몰락과 보수·우파 정권의 득세도 그의 인기원인 중 하나로 파악된다. 오얀타 우말라 대통령이 이끄는 좌파 정권이 경제난과 부패 의혹으로 갈수록 지지세력을 잃는 사이 친기업·친시장 공약을 내건 게이코 후지모리는 국민들로부터 경제를 회생시킬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현지 여론조사 업체 GfK페루에 따르면 게이코 후지모리는 이달 1일 현재 32.6%의 지지율로 부동의 1위를 기록했다. 뒤이어 사업가이자 국회의원 출신인 세사르 아쿠냐 페랄타가 10%,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 전 재정장관이 9.5%의 지지율로 각각 2위와 3위를 달리고 있다. 최근 두 자릿수 지지율을 확보하며 유력 대선후보로 부상한 훌리오 구스만은 후보선출 과정에서의 문제로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출마 금지를 당했다. 4월10일로 예정된 대선에서 후보 한 명이 50% 이상을 득표하면 바로 대통령으로 당선되며 그렇지 않을 경우 2개월 후인 6월 1·2위 후보가 다시 선거를 치러 대통령을 결정하게 된다.
/최용순기자 senys@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