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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업이 기획한 베트남 영화가 베트남 현지 역대 최고 흥행을 기록했다. 한국의 영화기획·마케팅 경험과 한류 3.0의 핵심으로 꼽히는 '현지화' 전략의 결합이 성공의 열쇠가 돼 케이(K)무비 시작에 신호탄을 쏘았다는 평가다. 국내 투자배급사 CJ E&M은 지난해 12월 베트남 현지에서 개봉한 영화 '내가 니 할매다'가 지난 17일 기준 누적 매출 476만 달러(한화 약 58억 6,600만원)를 기록하며 외화를 제외한 역대 최고 흥행작으로 등극했다고 22일 밝혔다. 외화까지 포함해도 '분노의질주7(690만 달러)', '어벤져스2(500만 달러)'에 이은 3위다.
한-베트남 합작영화 '내가 니 할매다'의 성공은 철저한 기획과 전략에 따른 결과라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같은 방식을 통한 또 다른 성공을 점쳐볼 수 있다는 의미다. CJ E&M 측은 △국가·민족을 가리지 않고 공감을 얻어내는 이야기의 선택 △국가·민족별 정서에 맞게 세부 사항을 변형하는 현지화 △영화의 이야기적 완성도에 집중 △대규모 시사회 등 마케팅 실시 등 총 4가지를 흥행의 핵심 이유로 분석한다.
우선 인종이나 국가·민족에 상관없이 인류 보편정서를 자극하는 이야기(Source)를 잘 고르는 게 중요하다. '내가 니 할매다'는 스무 살 처녀의 몸으로 돌아간 70세 할머니가 인기 절정의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는, 누구나 한 번 꿈꿔볼 판타지를 담고 있다. 이 이야기는 2014년 한국에서 '수상한 그녀'로 먼저 개봉해 865만 관객을 동원했으며 2015년 중국에서도 '20세여 다시 한번'이라는 이름으로 3억 6,500만 위안(약 670억원)이라는 매출을 기록한 바 있다. 오는 4월 일본판이 개봉하고, 태국판·인도네시아판이 제작 중일 정도로 공감받는 원천 소스인 셈이다.
두 번째는 현지 관객 정서에 맞는 각색, 즉 '현지화'다. 일례로 베트남의 경우 코미디 영화의 인기가 높아 제작진은 슬랩스틱과 말장난 등 현지화된 유머 코드를 대거 추가했다. 또 '수상한 그녀' 속 오둘희(심은경)는 김정호의 '하얀 나비'를 부르며 과거를 회상하지만, 중국 버전에서는 국민가수 덩리쥔(鄧麗君)의 음악이 삽입되고 베트남 버전에서는 베트남 명곡들이 리메이크돼 사용된다. CJ E&M 측 관계자는 "한류가 인기를 끌었다고 해도 한국의 문화·정서는 여전히 '제3세계의 낯선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며 "'원 소스 멀티 테리토리(OSMT·하나의 이야기 원천을 모티브로 국가별 현지화 과정을 거쳐 영화화하는 방식)'의 핵심은 미국의 문화·정서를 강요하는 '할리우드' 방식이 아니라 해당 지역의 정서를 최대한 흡수함으로써 문화 장벽을 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화적 완성도를 높이는 것과 효율적인 마케팅 등은 CJ E&M이 그동안 한국 시장에서 쌓아온 노하우가 발휘된 것으로 보인다. '내가 니 할매다'는 스타 배우의 출연 등 볼거리에 힘을 쏟기보다 이야기에 공을 들였다. 잘 만들어진 이야기는 대규모 사전 시사회 등 베트남에서는 시도되지 않던 다양한 마케팅을 통해 서서히 입소문을 탔다.
CJ E&M 측은 "우리의 독창적인 글로벌 영화 시장 진출 전략은 할리우드에서도 예의 주시할 만큼 인정받고 있다"며 "이 전략을 통해 현지 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고 네트워크가 확대되는 등 여러 무형의 이익도 얻을 수 있기에 우리로서는 더욱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김경미기자 kmkim@sed.co.kr
사진제공=CJ 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