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9회 세계 제빵월드컵’에서 우승한 우리나라 팀(윗줄 오른쪽부터 4명)이 심사위원들과 함께 트로피를 들고 기념촬영하고 있다./사진제공=박상규 대표
지난 9일 우리나라 대표팀 코치 박상규 대표가 태극기를 들고 팀원들과 함께 입장하고 있다./사진제공=박상규 대표
‘제9회 제빵월드컵’ 우승 작품인 ‘활쏘는 고구려 무사’. 우리나라 스포츠인 양궁을 형상화한 빵 공예 작품./사진제공=박상규 대표
동네 빵집 사장님들이 세계 최고 제빵사로 우뚝 섰다.22일 제빵업계에 따르면 지난 9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9회 제빵 월드컵’ 경기장에서 한국팀이 우승해 애국가가 울려 퍼지고 태극기가 휘날렸다. 1992년 창설돼 4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세계 최고 제빵사 경연장인 월드컵 대회에서 우리나라 팀이 우승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대회에는 프랑스와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12개국이 참가했다.
한국에 첫 우승의 영예를 안긴 주인공들은 동네 빵집 사장들이다. 코치를 맡은 박상규(53) 레드밀(서울 관악구 성현동) 대표와 팀장 박용주(42) 바누아투(청주 복대동)대표를 비롯해 팀원으로 함께한 이창민(42) 하레하레(대전 둔산동) 대표, 김종호(41) 슬로우브레드(대전 전민동) 대표의 제빵 경력을 합치면 100년에 이른다. 지난해 5월부터 올 2월까지 10개월 동안 제과협회의 도움을 받아 경기도 광주의 제빵 기계공장에서 합숙하며 사비를 들여 훈련했다.
이들은 학원이 아닌 현장에서 먹고 살기 위해 제빵 기술을 배운 것을 우승의 비결로 꼽았다. 제빵 국가대표팀을 지도한 박상규(53) 코치는 이날 서울경제신문 취재진과 만나 30여년 전을 회상했다. “서울에 가면 배고프지 않을 것 같았어요. 더욱이 빵집에서 일하면 맘껏 빵을 먹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박 코치는 생활이 어려워 다니던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고향인 전남 해남에서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아는 선배를 따라 이화여대 앞 제과점 그린하우스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요즘엔 제과제빵 학원이나 직업학교가 많지만 그 당시엔 학원도 몇 곳 없었고 돈이 없어 다닐 엄두도 못냈다”며 “설거지와 청소를 하며 어깨너머로 조금씩 기술을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제과점 안 쪽에 마련된 방 한 칸에서 서너명에서 많게는 일곱명의 제빵사들이 함께 생활했다. 배고프지 않고 잠 잘 곳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던 때였다. 언젠가 번듯한 빵집을 차릴수 있다는 희망으로 버텼다.
박 코치가 본격적으로 제빵 기술 연구에 몰두하게 된 계기는 군대였다. 부대에는 대학에 다니는 또래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고등학교 중퇴 학력에 빵집에서 일하다 왔다고 말하기 창피했다. 그는 “지금은 사람들이 쉐프(요리사)라고 부르며 전문기술자로 대우해주지만 그땐 제빵공이라고 불렸고 천한 직업이라는 시선이 많았다”고 말했다. 직업에 회의감이 들면서 그만둘 생각도 했다. 하지만 곧 생각을 바꿨다. 배운 게 제빵 기술 하나뿐이었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해 시작했지만 이 기술로 보란듯이 성공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제대 후 하루에 2포대(한 포대에 20kg)씩 30년 넘도록 그가 지금까지 뜯은 밀가루는 2만 포대가 넘는다. 계절별로 새로운 빵을 개발해냈다. 지금도 그가 운영하는 관악구 성현동 레드밀 유기농 제과점에는 일반 빵집에서 보기 힘든 빵 종류가 많다.
이번 대회에서 빵 공예 부문을 담당한 박용주 팀장도 마찬가지다.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아 대학교를 그만둔 후 동네 빵집에서 제빵 기술을 배웠다. 박 팀장은 “학원은 상대적으로 자격증을 따기 위한 교육 과정에 특화돼 있다”며 “현장에서 수없는 시행착오를 거쳐야 맛있는 빵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밀가루를 넣을지 반죽은 어떻게 할지 나만의 노하우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 팀장의 노하우는 우승 작품인 ‘활 쏘는 고구려 무사(사진)’에 녹아들었다. 바게트 빵으로 만든 용 위에 올라탄 초콜릿 갑옷의 고구려 무사는 장엄한 표정으로 활 시위를 당기고 있다. 맛있는 빵을 만들기 위한 노력의 땀이 세계 제빵 무대에서 한국의 멋을 뽐내는 작품으로 결실을 맺었다.
박 코치와 국가대표들은 정상에 서고 보니 비전이 명확해졌다. 박 코치는 “대회 출전을 위해 프랑스 시내 제과점을 돌아봤다”며 “제빵실이 지하에 있어 환경이 열악했는데도 제빵사들의 빵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는 “빵 종류와 디자인을 배우러 일본이나 프랑스에 가보면 대대로 제과점을 하는 기업이 많은데 우리나라에는 많지 않다”며 “100년 기업이 많아지도록 노력해야겠다는 꿈이 생겼다”고 덧붙였다. 박 팀장은 “백화점이 생기고 프랜차이즈 기업 빵집이 들어서면서 동네 빵집의 설 자리가 줄어든 건 사실이지만 유기농 밀가루와 좋은 재료로 빵을 만들고 나만의 기술력과 노하우로 새로운 빵을 개발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제과점이 지정돼 내 기술을 선보일 수 있는 장이 마련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백주연기자 nice89@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