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 껍데기 폐수처리제…빅데이터와 융합 마요네즈…바이오가 새 먹거리 만든다

[불황을 이기는 길 융합이 답이다]<4> 4차 산업혁명 중심에 선 바이오
의약·화학·식품·환경 등 '총성없는 선점 전쟁'
삼성·SK, 그룹차원서 바이오 신약 개발 올인
GS칼텍스·LG도 바이오 에너지 생산에 공들여

GS칼텍스 연구원이 대전 기술연구소에 위치한 바이오 부탄올 생산 시설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제공=GS칼텍스
미국 대형마트인 홀푸드마켓(Whole Food Market)에서 불티나게 팔리는 ‘저스트 마요(Just Mayo)’는 언뜻 다른 마요네즈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친환경을 표방하는 포장과 더 감미로운 맛이 유명세의 원인이었을까? 그렇지만은 않았다.

스타트업 ‘햄튼 크릭’이 생산한 이 제품은 사실 바이오와 데이터 분석 기술의 융합에 의해 탄생한 최첨단 식품이다.

햄튼 크릭은 식물성 원료로만 건강하면서도 맛있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수십만, 수백만 종의 식물 단백질을 분석했다. 구글맵의 데이터 분석가를 부사장으로 영입하는 등 공을 들인 끝에 마요네즈와 비슷한 맛의 단백질을 발견했고, 이를 상품화해 기존의 마요네즈보다도 건강하면서도 맛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햄튼 크릭은 저스트 마요에 이어 ‘저스트 쿠키’ 등을 개발해 인기몰이를 이어가고 있다. 바이오와 정보통신기술(ICT)이 결합해 새로운 시장을 연 셈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이 같은 융합 바이오 산업이 오는 2030년께부터 본격적으로 날개를 펼 것이라고 전망한다.

LG경제연구원 등에 따르면 이는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수식어로도 표현된다. 지난달 말 스위스에서 열린 다보스 포럼에서도 바이오 혁명은 4차 산업혁명의 중심으로 거론됐다. 미래학자 제레미 리프킨은 지금까지의 산업혁명이 에너지원의 변화에 따라 발생했다고 지적한다. 1, 2차 산업혁명이 각각 증기기관과 석탄, 석유와 전기의 등장으로부터 촉발됐고, 화석연료가 신재생에너지로 대체되는 과정에서 3차 산업혁명이 일어난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이어 4차 산업혁명은 현존하는 기술 간의 융복합을 따라 진행되는데, 그 중심에는 바이오가 있다. 우리나라 기술표준원의 분류에 따르면 바이오 산업을 대략 8가지로 나뉜다. 바이오 의약, 바이오 화학, 바이오 식품, 바이오 환경, 바이오 전자, 바이오 공정·기기, 바이오 에너지·자원 바이오 정보서비스 등이다.

산업계에서는 이미 4차 산업혁명을 겨냥한 경쟁이 치열하다. 가장 움직임이 활발한 분야는 바이오의약이다. 삼성그룹은 오는 2018년까지 단일 공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인 삼성바이오로직스 제3공장을 짓기로 하는 등 바이오의약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에피스를 통해 바이오 의약 분야를 공략하는 것 외에도 다양한 바이오 산업을 연구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그룹 사장단은 지난달 27일 이상엽 카이스트 특훈 교수를 초빙해 바이오 에너지에 대한 강연을 듣기도 했다.

SK 역시 그룹 차원에서 바이오 의약 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SK㈜ 계열사인 SK바이오팜, SK바이오텍 등이 바이오 신약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SK E&S는 환경부·강원도·홍천군과 손잡고 강원도 홍천군 소매곡리를 친환경 에너지 타운으로 조성하는 등 바이오 에너지 사업에 주목하고 있다. 이 마을은 하수종말처리장과 가축 분뇨처리장에서 발생하는 악취가 심각했다. SK E&S의 자회사인 강원도시가스는 분뇨처리장 악취의 주범인 바이오 가스를 도시가스로 재탄생시켜 마을에 공급했다. 마을의 음식물찌꺼기도 바이오가스의 생산 원료가 됐다. 연간 750세대가 쓸 만큼의 도시가스가 공급되자 가구당 40만원 수준이던 마을 주민들의 난방비도 20만원 이하로 줄었다.

바이오 화학 분야에선 GS칼텍스의 실험이 눈에 띈다. GS칼텍스는 차량용 연료, 화학 원료로 쓰이는 바이오 부탄올의 데모 플랜트 건설을 준비 중이다. 폐목재, 팜 부산물, 농업 부산물 등이 바이오 부탄올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원료다.

GS칼텍스는 친환경 플라스틱의 원료인 바이오폴리머 공장도 연내 착공할 예정이다. 큰 규모는 아니지만, 공장 건설에 이어 전남 지역의 바이오화학 벤처기업 육성에도 나설 계획이다.

GS칼텍스는 전남에 흔한 꼬막, 굴 껍데기를 이용한 폐수 처리제도 개발하고 있다. 전남 창조경제혁신센터에 입주한 벤처기업 ‘드림라임’과 함께 폐수 처리에 쓰이는 이온화 칼슘제를 만드는 시범 사업이다. 드림라임은 지난 2003년 세계 최초로 꼬막 껍데기로 항균 위생 제품을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했지만, 10년 넘도록 생산수율이 30%에 그쳐 상용화가 늦어지고 있었다. GS칼텍스는 “드림라임이 전남 센터 입주 후 GS칼텍스 중앙기술연구소와 협업을 시작했고, 입주 3개월 만에 생산수율을 50%까지 끌어올렸다”며 “지난해 말부터 항균 지퍼백 등을 드림라임 브랜드로 판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바이오를 뿌리로 다양한 산업이 등장한 것은 기술이 발전한 덕분이다. 유기돈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금까지 바이오 기술 자체가 발전하는 과정이었다면, 앞으로는 바이오와 다른 분야가 결합하면서 기술이 개발되는 시대가 될 것”이라며 “바이오 기술은 많든 적든 거의 대부분의 산업 분야에 적용되면서 다양한 신사업 기회를 창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밖에도 LG그룹은 LG생명과학과 LG화학을 통해 바이오 사업 육성에 한창이다. LG생명과학은 바이오 의약 분야에 주력하고 있으며, LG화학은 지난 1월 동부팜한농 인수 계약을 맺고 바이오 화학 시장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박진수 LG화학 부회장은 에너지·무기소재와 함께 바이오를 미래 신성장 동력으로 꼽고 있다.

시장조사기관인 마켓라인 등에 따르면 글로벌 바이오 산업 규모는 지난 2014년 3,231억 달러에서 2019년 4,273억 달러로 성장할 전망이다. 우리 정부는 오는 2024년 세계 바이오 시장이 국내 3대 수출 품목(휴대전화·반도체·디스플레이)의 전체 시장보다 규모가 커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유주희기자 ginger@sed.co.kr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