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학습하는 인공지능 투자 로봇, 변화무쌍 시장에서 얼마나 성과 낼까

금융권 ‘로보어드바이저’ 도입 붐

<이 콘텐츠는 FORTUNE KOREA 2016년 3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자산관리시장에 ‘로보어드바이저(Robo-advisor)’ 열풍이 거세다. 지난해 12월 NH농협증권이 국내 최초의 로보어드바이저 상품을 출시한 데 이어 지난 1월에는 KB국민은행도 관련 상품을 내놓으면서 로보어드바이저 열풍이 금융권 전체로 확산하고 있는 모습이다. / 김강현 기자 seta1857@hmgp.co.kr◀


지난해 4분기부터 KDB대우증권, NH농협증권, 삼성증권 등 몇몇 증권사를 중심으로 진행돼오던 로보어드바이저 자산관리시장 선점 경쟁이 최근에는 금융권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맞춤형 자산관리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는 데 더해 금융위원회가 오는 3월부터 도입되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 하나의 통장으로 예금이나 적금은 물론 주식 · 펀드 · 파생상품 투자가 가능한 통합 계좌)에 일임형도 운영을 허용하면서 로보어드바이저를 활용한 상품 수요가 크게 늘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투자자가 개별 투자 상품을 하나하나 직접 고르는 신탁형과 달리 일임형은 투자자가 금융업체들이 구성해 놓은 투자 포트폴리오를 고르는 방식이다. 개인 고객들은 각 금융상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신탁형보다는 일임형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비과세 혜택이 커 큰 인기를 끌 것으로 전망되는 ISA에 일임형이 허용되면서 고객에게 얼마나 ‘다양한’ ‘양질의’ ‘맞춤형’ 포트폴리오를 제공해줄 수 있느냐에 따라 향후 금융업체들의 희비가 엇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배경 때문에 최근에는 로보어드바이저 도입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던 금융업체들도 로보어드바이저 관련 기업들을 초청해 사업설명회를 여는 등 로보어드바이저 상품 구성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다. 로보어드바이저는 로봇을 의미하는 ‘로보(Robo)’와 자산관리전문가를 뜻하는 ‘어드바이저(Advisor)’를 합성한 말로, 인공지능 자산관리나 그 기술, 또는 서비스를 두루 일컫는 말이다.

로보어드바이저는 투자자가 입력한 정보를 바탕으로 프로그램에 저장된 특정 알고리즘을 활용해 자동으로 투자자의 자산을 관리해준다. 언뜻 시스템 트레이딩의 자동매매 서비스나 퀀트(Quant · 금융 계량 분석) 서비스와도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로보어드바이저는 이들과 확연히 구분된다. 시스템 트레이딩은 사용자 자신이 직접 매매 조건을 지정해줘야 한다는 점에서 퀀트 서비스나 로보어드바이저와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로보어드바이저와 퀀트 서비스는 투자자가 알고리즘화돼 있는 상품을 고르기만 하면 자동으로 매매 조건이 구성돼 이후에는 프로그램이 알아서 매매하거나 자문해준다는 점에서 비슷한 면이 있다. 둘 다 방대한 과거 자료를 알고리즘 소스로 활용한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하지만 로보어드바이저는 스스로 데이터 조합을 익히고 학습하는 ‘머신러닝’ 기술이 적용돼 퀀트 서비스보다 훨씬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준다. 퀀트를 활용한 서비스가 낱개나 소수의 알고리즘 프로그램에 의해 작동된다면, 로보어드바이저는 수많은 퀀트를 재결합한 서비스라는 얘기다. 과거 지향적인 퀀트와 달리 로보어드바이저는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특징도 가지고 있다. 말 그대로 인공지능인 셈이다.

로보어드바이저와 퀀트의 차이는 분명하지만, 상품으로 만들어진 둘의 서비스 차이를 발견하는 건 쉽지 않다. 최근 업계 일부에서 일고 있는 ‘가짜 로보어드바이저’ 논란은 퀀트 수준의 서비스를 로보어드바이저인 양 포장하거나 둘을 구별하지 않고 사용한 것이 배경이 됐다.

금융 선진국인 미국에서는 이미 2012년부터 로보어드바이저가 도입돼 현재는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미국 컨설팅 업체 AT커니는 올해 미국의 로보어드바이저 시장 규모가 3,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AT커니는 미국의 로보어드바이저 시장이 2020년에 2조 2,000억 달러 규모로 커질 것으로 예측하기도 했다.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금융 공학이 발달하지 못한 우리나라는 로보어드바이저 도입 역사가 매우 짧은 편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로보어드바이저라는 개념 자체를 생소하게 여기는 투자자들이 많았다. 퀀트 투자조차도 최근 주목받기 시작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로보어드바이저는 미지의 세계나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로보어드바이저가 국내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건 지난해 하반기 증권사들이 로보어드바이저를 활용한 상품 개발에 관심을 보이면서부터다. 제일 먼저 관심을 보인 곳은 KDB대우증권이었다. KDB대우증권은 지난해 9월부터 쿼터백, AIM 등 주요 로보어드바이저업체들과 제휴를 맺고 상품 개발 논의를 본격화했다. KDB대우증권은 올해 1분기 내에 서비스를 론칭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국내에서 로보어드바이저 상품을 가장 먼저 출시한 곳은 NH농협증권이다. NH농협증권은 지난해 10월 로보어드바이저 개발 등을 목적으로 하는 핀테크 TFT를 출범시켰다. 같은 해 12월에는 ‘QV 로보 어카운트’라는 이름의 로보어드바이저 상품을 출시하며 국내 로보어드바이저 자산관리시장의 문을 열었다. QV 로보 어카운트는 베타서비스로, NH농협증권은 오는 3월 QV 로보 어카운트를 업그레이드한 정식 버전을 선보일 예정이다.

은행권에서는 KB국민은행이 가장 빠른 행보를 보였다. KB국민은행은 지난 1월 로보어드바이저 자문형 신탁상품인 ‘쿼터백 R-1’을 출시하며 은행권의 로보어드바이저 시장 진출을 본격화했다. 지난 2월에는 KEB하나은행이 ‘사이버PB’ 로보어드바이저 상품을 출시하며 맞불을 놨다. 오는 3월 ISA가 도입되는 만큼 은행권에서는 올해 상반기 내에 많은 로보어드바이저 상품이 쏟아져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맹목적인 로보어드바이저 예찬론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수한 상황에서의 시장 대응력이 검증되지 못했다는 이유로 로보어드바이저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부호를 붙이는 이들도 있다. 로보어드바이저를 준비하는 금융업체들조차도 로보어드바이저가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내기까진 상당 기간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로보어드바이저에 대한 수요는 앞으로 계속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주류를 이룬다.

로보어드바이저 전문 투자업체의 한 관계자는 말한다. “로보어드바이저는 모델에 적용되는 변수를 끊임없이 찾아내고 이를 지속해서 반영함으로써 계속 수정 · 보완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로보어드바이저에 경제지표 같은 정량적 해석 외에도 정성적인 부분까지 계량화해 변수로 포함시키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고요. 완성형으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수집하고 분석해야 할 데이터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데다, 맞춤형 자산관리에 대한 수요가 커지고 있어 로보어드바이저의 역할은 앞으로 점점 더 확대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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