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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직후 한진상사로 출발… 자산 38조 기업으로 성장
뚝심으로 '세계 3위' 일궈내
조중훈 회장 전기 출간으로 창업정신·물류산업史 재조명
올 여객기 100대 도입, 여객항공 글로벌 톱10 노려
열일곱 더벅머리 소년이 마주한 바다는 넓고도 깊었다. 소년의 이름은 조중훈. 책상 앞에 앉아 있어야 할 나이. 하지만 아버지의 사업이 기울며 휘문고보(현 휘문고등학교)를 중퇴했다. 일본 고베 조선소에서 수습생으로 일한 소년의 손톱 밑에서 기름 때가 까맣게 묻어 나왔다. 나라 없는 식민지 백성의 신분으로 일본인 밑에서 눈물 젖은 밥을 곱씹은 소년은 천신만고 끝에 기관사 자격증을 따냈다.
첫 항해의 목적지는 중국 상하이. 소년은 뱃머리에 홀로 서 굳은 결심을 했다. "지금은 일본 배를 타고 있지만 언젠가는 나의 배를 타고 조국으로 돌아오리라." 이 굳은 다짐이 대한민국 물류 기업사(史)를 다시 쓰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소년의 결심은 바다에서 육지로, 육지에서 또 하늘로 이어지며 대한민국은 물론 전 세계 곳곳에 사람과 재화를 나르는 글로벌 수송기업을 키워내는 밀알이 됐다. 한진그룹 창업주 정석(靜石) 조중훈 회장의 이야기다.
조중훈 회장의 전기 '사업은 예술이다'가 2일 출간됐다. 한진그룹은 이날 송도 그랜드하얏트인천에서 창립 70주년 기념식 및 조중훈 회장 전기 출간기념회를 열었다.
조 회장의 장남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아버지가 남긴 '수송보국(輸送報國·수송으로 나라에 보탬이 됨)'의 창업정신을 되새기는 한편 한국 교통·물류산업의 발전사를 재조명하기 위해 지난 2010년부터 전기 출간 작업을 직접 준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홍구 전 국무총리는 추천사를 통해 "인생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조 회장의 평전을 권하고 싶다"고 밝혔다. 조 회장과 친분이 두터웠던 손길승 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역시 "사업가로서 또 경영자로서 길을 잃었다면 조중훈을 만나보라"고 말했다.
조 회장의 일생은 곧 대한민국 물류의 역사와 같다. 1945년 해방과 함께 조국으로 돌아온 조 회장은 트럭 한 대를 불하받아 인천에서 부두 하역 일을 하는 한진상사를 설립했다. 조 회장이 사장이자 곧 말단 직원이었다. 그러나 회사 창립 후 70년이 흐른 현재 한진그룹은 대한항공·한진해운·진에어 등 계열사 39개사, 3만6,000여명의 직원을 거느린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2014년 현재 자산이 38조3,600억원에 이르고 대한항공이 운영하는 노선만도 43개국 115개 도시에 이를 정도로 비약적인 성장을 이뤄냈다.
사업수완이 남달랐던 조 회장이었지만 회사 성장 과정에서 고비도 있었다. 지난 1969년 당시 돈으로 27억원의 거대한 빚을 떠안고 있던 적자투성이의 국영항공사인 대한항공공사를 떠안았을 때에는 재계 안팎에서 "너무 큰 모험이다. 한진의 사운이 다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하지만 그는 평생을 지켜온 신용과 뚝심 하나로 대한항공을 세계 3위(국제화물수송량 기준)의 항공운수기업으로 키워냈다.
물류와 더불어 교육 또한 조 회장의 업적 중 하나로 꼽힌다. 집안 사정으로 고등 교육을 받지 못했던 조 회장은 인하공대를 인수하는가 하면 재계 최초로 사내대학(정석대학)을 설립하는 등 인재 양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배움에는 때가 없다. 장소도 없다. 배우려는 의지가 있을 뿐"이라는 게 조 회장이 평생을 유지한 확고한 신념이었다.
70주년을 맞이한 한진그룹은 이제 대를 이어 또 다른 도전에 직면했다. 그룹의 수장인 조양호 회장은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을 맡아 '기업보국'의 또 다른 족적을 남기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기업인으로서 쉽지 않은 자리이지만 "나라와 경제에 도움이 되도록 사명을 완수하겠다"는 게 조 회장의 생각이다.
현재 14위인 글로벌 여객 항공 수송 규모도 늘릴 계획이다. 이를 위해 올해 총 122억달러를 투입해 100대의 여객기를 새로 도입하는 중장기 계획도 공개했다. 또한 정부와 손을 잡고 무인항공기 기술도 적극 개발해 오는 2020년 100억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무인항공기 시장을 선점할 계획이다.
한진의 한 고위 관계자는 "과거 70년이 치열한 경쟁을 통해 생존과 경쟁력을 확보하는 기간이었다면 앞으로 70년은 진정한 '글로벌 톱 수송기업'으로 자리매김하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일범기자 squiz@sed.co.kr